[VOL.189] 삶이 흔들릴 땐, 고전에 마음을 기대어

이치훈
2025-05-07


근래 들어 흠칫 놀라며 옷을 여미게 만드는 밖의 때늦은 차가운 바람에 무색하게도 절기는 입하(立夏, 5월 5일)에 접어들었습니다. 여름이 시작되었지요. 일상의 군데군데가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이 시절, 여러분은 어디에 마음을 기대어 아득한 길을 걸어나가시나요?


과거와 비교해 실질적으로 가장 잘 먹고 사는 지금 세상에, 우리네 마음은 무엇을 먹고 살고있는지 점점 허기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대표적인 한학자 한송(寒松) 성백효 선생의 인터뷰 글을 통해, 추운 여름의 마음에 지혜를 구해보려 합니다.


한송 성백효 선생. “문화 초대석 | ‘논어와 60년’ 동양고전 연구가 성백효 씨.” 『월간 중앙』, 2015.01.22, 지미연 기자

평생을 한국과 중국의 고전을 연구한 한송 성백효(80) 선생은, 나라가 광복을 이룬 1945년 충남 예산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부친께 한문을 배웠고, 월곡 황경연 선생과 서암 김희진 선생을 사사했습니다. 스스로를 '최치원 이후 1000년 전통의 옛날식 한학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 중의 하나'라고 소개하듯, 이른바 ‘신학문’을 배우지 않고 한학자인 부친과 서당의 훈장 밑에서 한학을 수학했습니다.


서른세 살 되던 1977년 신문에서 우연히 민족문화추진위(현 고전번역원)에서 한학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서울로 상경해 6개월 만에 학생에서 30대 최연소 강사가 됩니다. 이어 단국대 동양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한한(漢韓) 대사전 편찬위원, 국방부 전사(戰史)편찬위원회에서 일하고 서울대·성균관대·경희대 등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고전번역원 교수로도 지냈습니다. 평생 고전 번역에 몰두한 선생은 1978년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굵직한 고전들을 포함해 한국 문집·역사서 등 70여 종 번역했습니다. 특히 1990년 주자가 쓴 논어 해설서인 ‘논어집주’를 국내 최초로 번역했고, 선생이 번역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집주’는 10만 권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입니다. 오서오경(五書五經) - 논어집주·맹자집주·대학 중용집주·소학집주·시경집전·서경집전·주역전의·예기집설대전 등 -을 완벽하게 집주하였는데, 조선시대에도 사서삼경 경문(經文)만 한글로 번역했지 주석서를 번역하지는 못했으니, 정부나 학교의 도움 없이 한 사람의 힘만으로 이런 작업을 한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학계의 평가를 받습니다.


지금까지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고전을 독송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선생은, 작년 고전에 나오는 경서들을 소개하며 삶의 지침을 펴낸 ‘세한(歲寒)의 마음’을 출간하고, 올해는 서경 해설서 개정 증보판을 내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유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한다면

‘양심을 되찾자’

"맹자가 말한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곧 양심입니다.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즉 불쌍한 사람을 보면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도 눈물 나고 도와주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이죠. 두 번째 의(義)가 수오지심(羞惡之心), 내가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며, 또 부끄러운 짓을 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한마디로 정의감이죠. 지금 우리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은 수오지심이 없는 거예요. 남이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비판해야 하는데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이면 무슨 일을 했어도 다 찍어주잖아요. 국민들이 이러니 정치인들이 그걸 믿고서 비행을 저질러도 아무 부끄러움이 없죠. 거듭 말하지만 수오지심은 자기의 잘못도 부끄러워해야 되지만 남의 잘못에 대해서도 분노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禮)라는 것은 공경하는 마음이고, 지(智)라는 것은 지혜니까 사태의 옳고 그른 것을 맑게 분별하는 마음이죠. 인의예지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에요. 수오지심이 없으니까 시비지심(是非之心)도 없어진 거죠. 저는 인의예지 중에서 지금 ‘의(義)가 가장 부족한 시대’라고 봅니다. 오로지 이익에 따라서 움직이는 시대죠. 사람이라는 게 신기해서 잘 먹고 잘살면 정신은 좀 안일해집니다. ‘명심보감’에 보면 ‘굶주리고 추우면 도심(盜心)이 나오고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심(淫心)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맹자의 이런 말씀이 있어요. 사람이 염치가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일이 없게 된다고요. 염치라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염치가 바로 양심이에요. 내가 이런 나쁜 일을 하면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운명을 다루는 주역(周易),

주어진 운명이란 게

있는 걸까요?

“저는 세 가지로 봅니다. 첫째, 유전입니다. 두 번째가 환경이에요. 아무리 유전자가 좋아도 가정환경이 좋아야죠. 마지막 세 번째는 철, 때(時)입니다. 흔히 사주팔자라고 하는 거죠. 제가 젊을 때 농사를 지어본 적 있는데 첫째, 좋은 종자를 심어야 해요. 그게 유전이죠. 씨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땅이 기름지고 관리를 잘해도 안 됩니다. 그다음 땅이 좋아야죠. 그게 환경이죠. 세 번째는 철이 맞아야 합니다. 가을에 보리를 심어야지 여름에 심으면 안 되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바꿀 수 없는 것에 관심 두지 말고, 바꿀 수 있는 ‘마음’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관상보다 심상(心象)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관상이 좋아도 마음의 상만 못하다는 거예요. 유전이나 환경은 내 잘못이 아니고 나에게 주어진, 바꿀 수 없는 겁니다. 주어진 자기 운명 안에서 최대한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는 데까지 극복하면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죠. 운명이라는 건 내일 좋게 될지도 모르고 나빠질지도 몰라요. 내가 최선을 다해서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면 나의 임무는 끝난 것이지, 그건 하느님 탓도 부모 탓도 아닙니다.”


주역(周易)이 건네는

희망적 메시지

“주역의 핵심 메시지는 '성(盛)하면 쇠(衰)하고 쇠하면 다시 살아난다'는 겁니다. 1년 중 6개월은 양(陽) 기운이 지배하고 6개월은 음(陰) 기운이 지배합니다. 동지가 지나면 조금씩 해가 길어지잖아요. 양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죠. 우리가 피부로는 느끼지 못해도 4월 지나서 5월 6월 지나면 음 기운이 올라옵니다. 이걸 사람 힘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양 기운은 따뜻하고 향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음은 좀 춥고 싫잖아요. 주역이라는 책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밤에 촛불을 켜듯이 양 기운을 더 키우고 더 견디자 이런 원리를 알려주는 겁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음 기운이 성할 때 갖는 마음가짐도 달라지죠.


현재 주어진 여건에서 선(善)한 방법으로 살라는 게 유교의 일반적 가르침인데 주역은 ‘참고 견뎌라, 지금 이런 상태가 계속 가지 않는다’면서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시련이 닥치면 이대로 망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지만 추운 겨울 남의 옷을 빼앗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참고 견디며 열심히 살다 보면 다시 따뜻한 봄이 돌아올 때가 있다 이겁니다.


며칠 전 한 분이 저한테 하소연하듯이 ‘우리나라가 이제 망하게 됐습니다’ 이래요. 사실 지금 현실을 돌아보면 좋다고 볼 건 아무것도 없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가 그냥 이대로 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뭔가 또 계기점이 생겨서 이 어려움이 지나가고 활기가 돌 겁니다. 신기한 것이 양 기운이 처음 일어날 때가 가장 추워요.”


평생을 연구한 논어에서

한 구절을 꼽는다면.

“(맨 앞장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입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

: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는 배운 것을 그냥 배우기만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복습하고 복습해서 실천도 해보고 하니 즐겁고 재미가 난다는 뜻입니다.


‘유붕자원방래’ 할 때 ‘붕(朋)’은 동창처럼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나와 생각과 뜻이 맞아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벗이 멀리서 오니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또, 공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나’ 했어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학문을 했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물론 마누라, 자식들이 몰라줘도 서운해하지 않으면 그게 군자라고 했어요. 이게 논어의 핵심입니다.”


위 글은 2025년 4월 4일 발행된 신동아X플라톤 아카데미 허문명 기자의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 “지금은 양심과 염치 사라진 시대… 가장 비극적 - [플라톤아카데미] 한학 연구 대가 한학자 성백효의 안타까움"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platonacademy.org/28/?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62452590&t=board

현생이 흔들릴 때 고전에 마음을 기울이는 건 어느 분야나 그러한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한 클래식 음악 전문 잡지 기사에서, 어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음악대학 교수가 말하길, 자신은 대중가요를 듣고 나면 일주일간 모차르트 음악으로 귀를 정화해야 회복이 된다는 발언을 읽었습니다. 당시 클래식 음악보다는 대중가요 편에 마음이 가있던 저는, 그 말이 꽤 황당하고 불편하였더랍니다. 그리고서 대학을 클래식 음악으로 전공하며 서양 음악사를 깊이 알게 되고 더 넓게 듣게 되면서, 뒤늦게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는데요.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작곡가로 대표되는 클래식 음악의 고전 시대는, 그 이전의 바로크 시대나 이후의 낭만주의 시대와는 달리 음악을 창작할 때 어떠한 표제적 의미나 특별한 목적이 없이 오로지 음악 자체의 형식미와 구조를 중시했습니다. 음악의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추구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살펴보면,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쇼팽이나 바로크 시대의 헨델의 음악과는 달리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에는 작곡가가 따로이 지은 제목이 없습니다. 단순히, 피아노 소나타 작품 번호 몇 번 이런 식이죠.


그중에서도 특히나 모차르트의 음악은 특유의 명료한 구조와 조화로운 선율로 고전 시대 절대음악의 정석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현대 과학 연구에서도 ‘모차르트 효과’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그의 음악은 일시적인 공간지각 능력이나 집중력을 향상하고, 뇌를 자극하여 즉각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여러 차례 내놓았습니다. 고전의 음악이 나의 귀에는 어떻게 다가오는지, 긴 연휴 끝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며 오늘은, 모차르트 음악 한 곡 어떠실까요? 모차르트 피아노곡 연주의 대표적인 한국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의 피아노 소나타 16번, K.545를 남깁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K.545 - 손열음]

'행복'은 무엇입니까?

질문에 선생은,

“‘지금 밥이 없어서 죽을 먹는다 해도 죽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마음 갖는 것이 행복이죠. 사람이란 게 신기해서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 대하면 지겨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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