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가 떴습니다. 혼란 틈에 밝은 오늘, 맞이 잘하셨나요? 매일이 그렇지만 또 우리의 새로운 챕터가 펼쳐져 갑니다. 함께 발과 마음 맞춰 나가야겠습니다. 여름의 한 중간인 망종(芒種, 6월 5일)에 들며 날씨는 점점 무더워지고, 옷가지가 짧아지고 얇아지며 주변에 여름 감기 소식도 잦습니다. 몸 잘 보살피시며 맑고 푸른 여름날 만들어 나가시길 기원합니다. |
지난 5월 새로운 출발을 알린 “재단법인 止觀”이 2019년 여름부터 펼친 복합 인문·문화 공간 “止觀書架 지관서가”가 어느덧 열한 번째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止觀書架 지관서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간을 제공하고, SK그룹이 재원을 기부, 재단법인 止觀이 기획을 맡아 탄생한 ‘복합 인문 문화공간’으로, 현재 울산에 6개소, 경기 여주와 경북 울진, 안동, 수원에 각 1개소가 조성되었고 올해 하반기 평택에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2021년 4월 울산대공원을 시작으로 장생포, 선암호수공원, UNIST(울산과학기술원), 울산시립미술관, 박상진호수공원, 경기 여주 여백서원 괴테 마을, 안동 문화 공원, 울진 금강송 숲, 수원 글로벌평생학습관까지 주로 숲이나 호수, 바다, 공원에 둘러싸인 지역에 있는 덕분에 현재 지관서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뷰 맛집’으로 소문이 나며 시민들 사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지관서가 도장 깨기’까지 생길 정도로 순례객도 생겨났습니다. |
단순한 북 카페를 넘어서 지역의 ‘인문 활동공간’을 목표로 기획되고 운영되어 오고 있는 지관서가는 문화적 인프라가 취약한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서가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과 인문 활동가가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지역 주민을 하나로 묶는 인문 행사를 끊임없이 기획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관서가의 맨 첫 기획 단계부터 지금까지 공간 조성 후의 쓰임에 늘 팔을 걷어붙여 함께해 온 재단법인 止觀 최선재 실장의 인터뷰를 통해 지관서가를 한층 더 깊이 만나보려 합니다. |
‘지관서가’라는 콘셉트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그동안 지역사회에 체육관, 어린이집, 양로원 등 공공시설을 증축하는 일이 사회 공헌 사업으로 이뤄졌습니다. 재단은 공간이 가진 다양한 효용을 극대화할 방법을 오랜 기간 고민해 온 끝에 ‘책 공간이 좋겠다’라는 의견이 이사회를 통해 모여졌습니다. 온라인 시대인데 오프라인 공간에, 그것도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각종 영상 콘텐츠가 대세인 상황에서 물성(物性)을 지닌 책에 집중하는 게 맞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만 ‘성찰과 사유’를 통해 ‘행복의 마인드셋’을 해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사업 취지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관련한 우려도 잦아들었습니다. 자기 내면을 이해해야 인간은 행복에 도달할 수 있고, 이에 독서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사진의 방향은 결과적으로 정확한 방향이었습니다.”
재단 사업이라고 하면 ‘인문학 강연’이나 ‘콘텐츠 확산’이 떠오르는데요.
“2010년 11월 4일부터 시작된 재단 사업은 10여 년간 동서양 고전 강연과 연구 지원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인문학의 심화 및 확산을 위한 사업 위주였고, 장학사업도 더해졌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고,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펼쳐갈 것인지를 고심하던 차에 ‘고전’에서 ‘현실’의 인문학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오자는 재단의 새 방향을 잡았습니다.
초중고 그리고 대학 과정까지 많은 공부를 열심히도 하지만, 정작 살면서 마주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배우고 숙고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관계란 무엇이며 우정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뭔지, 왜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잘 늙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질문을 삶 속에서 마주하지만, 이에 대한 마땅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연스레 이러한 인생 주제를 고민하는 일이 재단 사업이 됐습니다. 앞선 고민은 우리 시대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지속된 고민이었다면 누군가는 이를 생각하고 기록했을 테니 우리는 관련 내용을 집대성해 나가자고 방향을 세웠습니다. 그 길에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와 함께 재단이 설립한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고려대 기반으로 만들어진 ‘엠랩(마인드랩)’, ‘서강대 희망연구소’가 협업하고, 그 축적물을 공간으로 풀어낸 것이 바로 지관서가입니다. |
기존 관공서 문화 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애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전국을 다녀보면 서울, 경기를 제외하고는 인구 감소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방에 가면 정말 썰렁해요. 한국을 대표하는 부자 도시라는 울산 역시 청년,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인구가 빠르게 감소했습니다. 120만 명이던 인구도 어느덧 11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일자리 감소, 교통 등 주거 환경의 불편 등이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꼽히는데, 지역 주민이 활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없다는 것 역시 문제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지방에 살면 경험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지요. 관공서에서 운영하는 문화 프로그램이 꽤 있지만 대부분 낮 시간에 운영돼 직장인이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울산에서 지관서가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과거 야학처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인문 활동가를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작지만 특색 있는 동네 책방들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역 특색에 걸맞게 주제를 선정해 도서를 큐레이션 한 것이 매우 신선합니다.
“선암호수공원 지관서가는 지역 노인복지관 앞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여기에 착안해 ‘나이 듦’이라는 인생 테마를 선정하고, 이를 주제로 책 큐레이션을 했습니다. 울산에는 공장이 많은데, 퇴직자들에게 제2의 삶을 위한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를 살려 조성했습니다.
유니스트 지관서가는 경쟁이 치열하고 두뇌를 많이 사용하는 대학의 분위기 특성상 ‘명상’을 주제로 한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모였고, 학생들에게 쉼과 안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조성했습니다.
여주 괴테 마을 지관서가의 경우 괴테 학자 전영애 명예교수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 명예교수는 생애 전부를 ‘괴테’라는 인물에 천착해 왔는데 그분의 업적이 놀라웠습니다. 인문학적으로 매우 훌륭한 호스트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여 협업하게 되었고, 젊은 괴테의 집 1층에 서가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의 인생 테마는 평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간 괴테의 삶에서 착안해 ‘극복’으로 선정했습니다.” |
지자체에서도 협업 제안이 많을 것 같습니다.
“첫 지관서가 울산대공원 지관서가의 문을 연 당시가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이었습니다. 방문객이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하루 입장객이 200명을 넘어 매우 놀랐습니다. ‘공간의 힘’에 대해 크게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관서가의 활동이 제법 알려지면서 이곳저곳에서 많은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위원회도 힘을 보태 지관서가의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들기로 했답니다.”
요즘 지방마다 인구 소멸 때문에 걱정이 많은데요, 지관서가의 인문 프로그램들을 기획/운영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예전보다 희망적인 부분은 청년들이 하나둘 귀농과 귀촌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지역 신문 및 방송국이 운영되기 시작했고, 독서 모임도 생겨났습니다. 앞으로 지관서가가 지역 인문 활동가의 아지트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책 정리, 망가진 책 복원, 분실 도서 확인 등 서가 운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모임 및 활동이 생기고 있는데, 이것 역시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
UNIST(울산과학기술원) 교내 한 가운데에 위치한 가막저수지 한 면을 둘러싸고 앉은 학술정보관 1층에, 2022년 여름 지관서가가 네 번째 둥지를 틀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멈춤 없는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10위권의 젊은 대학으로 당당히 자리하고 세계 무대에서 다양한 국제 협력을 추진하고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사이, 학생들의 높은 학업 부담과 경쟁 환경으로 인해 정신건강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유니스트 학생들과 구성원, 주민들이 잠시 멈춰서 내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止觀 지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곳의 인생 테마는 '명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곳에 붙은 부제 '비움의 공간, 연결의 시간'처럼, 유니스트 지관서가는 몸과 마음을 텅- 비워내고 다시금 자기 자신부터 주변 사람들, 자연, 크고 작은 생명들 나아가 이 세계와의 연결성을 회복하는 곳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
명상을 주제로 한 책 큐레이션과 더불어, 특별히 이곳에서는 ‘공간을 위한 음악’과 ‘4가지 명상법 안내가 포함된 음원’을 기획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침묵’ ‘집중’ ‘비움’ ‘드러남’이라는 4가지의 소주제는 명상의 보편적인 한 과정인 동시에, 유니스트 지관서가가 지향하는 가치 덕목이기도 합니다. 이 4가지의 소주제를 통해 서가의 책들을 분류하여 큐레이션하고, 4개의 명상 안내 음원이 구성되었습니다. 방문객들은 서가 한쪽에 비치된 QR코드를 통해 테마별 명상 음악이나 명상 안내 음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서가 뒷문으로 이어진 가막못 산책로를 걸으며, 안내 음원을 따라 체험하는 걷기 명상은 이곳만의 특별한 경험이겠습니다. |
(케렌시아(QUERENCIA) - Silence) |
끝으로, 이곳을 위해 작곡된 명상적 음악이 담긴 ‘케렌시아(QUERENCIA) - <Ode to Empty Room(빈 공간에 바치는 소리 헌사)>’ 앨범 중 ‘Silence’을 공유해 드립니다. 낮은 볼륨으로 공간에 재생해 두시고, 잠시나마 몸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비우며 새롭게 현재 순간에 접촉해 마음을 일깨우는 시간 만드시면 좋겠습니다. |
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어떠셨나요? 당신의 소중한 의견은 저희를 춤추게 합니다🤸♂️ |
재단법인 止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7길 32 SK관훈빌딩 11층 수신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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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가 떴습니다. 혼란 틈에 밝은 오늘, 맞이 잘하셨나요? 매일이 그렇지만 또 우리의 새로운 챕터가 펼쳐져 갑니다. 함께 발과 마음 맞춰 나가야겠습니다. 여름의 한 중간인 망종(芒種, 6월 5일)에 들며 날씨는 점점 무더워지고, 옷가지가 짧아지고 얇아지며 주변에 여름 감기 소식도 잦습니다. 몸 잘 보살피시며 맑고 푸른 여름날 만들어 나가시길 기원합니다.
지난 5월 새로운 출발을 알린 “재단법인 止觀”이 2019년 여름부터 펼친 복합 인문·문화 공간 “止觀書架 지관서가”가 어느덧 열한 번째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止觀書架 지관서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간을 제공하고, SK그룹이 재원을 기부, 재단법인 止觀이 기획을 맡아 탄생한 ‘복합 인문 문화공간’으로, 현재 울산에 6개소, 경기 여주와 경북 울진, 안동, 수원에 각 1개소가 조성되었고 올해 하반기 평택에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2021년 4월 울산대공원을 시작으로 장생포, 선암호수공원, UNIST(울산과학기술원), 울산시립미술관, 박상진호수공원, 경기 여주 여백서원 괴테 마을, 안동 문화 공원, 울진 금강송 숲, 수원 글로벌평생학습관까지 주로 숲이나 호수, 바다, 공원에 둘러싸인 지역에 있는 덕분에 현재 지관서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뷰 맛집’으로 소문이 나며 시민들 사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지관서가 도장 깨기’까지 생길 정도로 순례객도 생겨났습니다.
단순한 북 카페를 넘어서 지역의 ‘인문 활동공간’을 목표로 기획되고 운영되어 오고 있는 지관서가는 문화적 인프라가 취약한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서가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과 인문 활동가가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지역 주민을 하나로 묶는 인문 행사를 끊임없이 기획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관서가의 맨 첫 기획 단계부터 지금까지 공간 조성 후의 쓰임에 늘 팔을 걷어붙여 함께해 온 재단법인 止觀 최선재 실장의 인터뷰를 통해 지관서가를 한층 더 깊이 만나보려 합니다.
‘지관서가’라는 콘셉트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그동안 지역사회에 체육관, 어린이집, 양로원 등 공공시설을 증축하는 일이 사회 공헌 사업으로 이뤄졌습니다. 재단은 공간이 가진 다양한 효용을 극대화할 방법을 오랜 기간 고민해 온 끝에 ‘책 공간이 좋겠다’라는 의견이 이사회를 통해 모여졌습니다. 온라인 시대인데 오프라인 공간에, 그것도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각종 영상 콘텐츠가 대세인 상황에서 물성(物性)을 지닌 책에 집중하는 게 맞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만 ‘성찰과 사유’를 통해 ‘행복의 마인드셋’을 해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사업 취지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관련한 우려도 잦아들었습니다. 자기 내면을 이해해야 인간은 행복에 도달할 수 있고, 이에 독서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사진의 방향은 결과적으로 정확한 방향이었습니다.”
재단 사업이라고 하면 ‘인문학 강연’이나 ‘콘텐츠 확산’이 떠오르는데요.
“2010년 11월 4일부터 시작된 재단 사업은 10여 년간 동서양 고전 강연과 연구 지원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인문학의 심화 및 확산을 위한 사업 위주였고, 장학사업도 더해졌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고,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펼쳐갈 것인지를 고심하던 차에 ‘고전’에서 ‘현실’의 인문학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오자는 재단의 새 방향을 잡았습니다.
초중고 그리고 대학 과정까지 많은 공부를 열심히도 하지만, 정작 살면서 마주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배우고 숙고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관계란 무엇이며 우정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뭔지, 왜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잘 늙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질문을 삶 속에서 마주하지만, 이에 대한 마땅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연스레 이러한 인생 주제를 고민하는 일이 재단 사업이 됐습니다. 앞선 고민은 우리 시대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지속된 고민이었다면 누군가는 이를 생각하고 기록했을 테니 우리는 관련 내용을 집대성해 나가자고 방향을 세웠습니다. 그 길에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와 함께 재단이 설립한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고려대 기반으로 만들어진 ‘엠랩(마인드랩)’, ‘서강대 희망연구소’가 협업하고, 그 축적물을 공간으로 풀어낸 것이 바로 지관서가입니다.
기존 관공서 문화 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애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전국을 다녀보면 서울, 경기를 제외하고는 인구 감소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방에 가면 정말 썰렁해요. 한국을 대표하는 부자 도시라는 울산 역시 청년,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인구가 빠르게 감소했습니다. 120만 명이던 인구도 어느덧 11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일자리 감소, 교통 등 주거 환경의 불편 등이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꼽히는데, 지역 주민이 활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없다는 것 역시 문제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지방에 살면 경험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지요. 관공서에서 운영하는 문화 프로그램이 꽤 있지만 대부분 낮 시간에 운영돼 직장인이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울산에서 지관서가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과거 야학처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인문 활동가를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작지만 특색 있는 동네 책방들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역 특색에 걸맞게 주제를 선정해 도서를 큐레이션 한 것이 매우 신선합니다.
“선암호수공원 지관서가는 지역 노인복지관 앞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여기에 착안해 ‘나이 듦’이라는 인생 테마를 선정하고, 이를 주제로 책 큐레이션을 했습니다. 울산에는 공장이 많은데, 퇴직자들에게 제2의 삶을 위한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를 살려 조성했습니다.
유니스트 지관서가는 경쟁이 치열하고 두뇌를 많이 사용하는 대학의 분위기 특성상 ‘명상’을 주제로 한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모였고, 학생들에게 쉼과 안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조성했습니다.
여주 괴테 마을 지관서가의 경우 괴테 학자 전영애 명예교수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 명예교수는 생애 전부를 ‘괴테’라는 인물에 천착해 왔는데 그분의 업적이 놀라웠습니다. 인문학적으로 매우 훌륭한 호스트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여 협업하게 되었고, 젊은 괴테의 집 1층에 서가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의 인생 테마는 평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간 괴테의 삶에서 착안해 ‘극복’으로 선정했습니다.”
지자체에서도 협업 제안이 많을 것 같습니다.
“첫 지관서가 울산대공원 지관서가의 문을 연 당시가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이었습니다. 방문객이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하루 입장객이 200명을 넘어 매우 놀랐습니다. ‘공간의 힘’에 대해 크게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관서가의 활동이 제법 알려지면서 이곳저곳에서 많은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위원회도 힘을 보태 지관서가의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들기로 했답니다.”
요즘 지방마다 인구 소멸 때문에 걱정이 많은데요, 지관서가의 인문 프로그램들을 기획/운영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예전보다 희망적인 부분은 청년들이 하나둘 귀농과 귀촌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지역 신문 및 방송국이 운영되기 시작했고, 독서 모임도 생겨났습니다. 앞으로 지관서가가 지역 인문 활동가의 아지트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책 정리, 망가진 책 복원, 분실 도서 확인 등 서가 운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모임 및 활동이 생기고 있는데, 이것 역시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 교내 한 가운데에 위치한 가막저수지 한 면을 둘러싸고 앉은 학술정보관 1층에, 2022년 여름 지관서가가 네 번째 둥지를 틀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멈춤 없는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10위권의 젊은 대학으로 당당히 자리하고 세계 무대에서 다양한 국제 협력을 추진하고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사이, 학생들의 높은 학업 부담과 경쟁 환경으로 인해 정신건강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유니스트 학생들과 구성원, 주민들이 잠시 멈춰서 내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止觀 지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곳의 인생 테마는 '명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곳에 붙은 부제 '비움의 공간, 연결의 시간'처럼, 유니스트 지관서가는 몸과 마음을 텅- 비워내고 다시금 자기 자신부터 주변 사람들, 자연, 크고 작은 생명들 나아가 이 세계와의 연결성을 회복하는 곳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명상을 주제로 한 책 큐레이션과 더불어, 특별히 이곳에서는 ‘공간을 위한 음악’과 ‘4가지 명상법 안내가 포함된 음원’을 기획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침묵’ ‘집중’ ‘비움’ ‘드러남’이라는 4가지의 소주제는 명상의 보편적인 한 과정인 동시에, 유니스트 지관서가가 지향하는 가치 덕목이기도 합니다. 이 4가지의 소주제를 통해 서가의 책들을 분류하여 큐레이션하고, 4개의 명상 안내 음원이 구성되었습니다. 방문객들은 서가 한쪽에 비치된 QR코드를 통해 테마별 명상 음악이나 명상 안내 음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서가 뒷문으로 이어진 가막못 산책로를 걸으며, 안내 음원을 따라 체험하는 걷기 명상은 이곳만의 특별한 경험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