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5] 내 마음이 방황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

김은희
2025-06-17



“내 마음이 방황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 있으십니까?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힘들게 올라간 산 정상에 앉아 경치를 바라볼 때, 또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기를 한 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과 심장의 쿵쾅거림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저는 오히려 가장 깊은 평안을 경험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조용한 새벽녘, 노트 한 귀퉁이에 적어 내려가는 단어에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고, 몰입해서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 시간, 혹은 친구와 웃음을 나누는 소중한 한때일 수도 있겠지요. 저마다의 관심과 방식은 다르지만, 누구나 그런 순간으로 들어가는 문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 속에서만큼은 세상의 소란도, 마음속의 소음도 살며시 가라앉습니다.


리베카 솔닛에게는 걷기가 그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나 봅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걷기의 인문학』


걷는 동안 어지럽던 생각은 조금씩 단순해지고, 발걸음이 잎을 밟는 소리, 바람이 피부에 닿는 감각, 햇살의 기운 속에서 ‘현재에 있는 나’를 인식하게 됩니다. 세상 어딘가를 향해 쫓기듯 나아가던 마음이 잠시 멈추고, 조용히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열립니다.


걷는 순간, 달리는 순간, 우리가 바꾸는 것은 단지 발걸음의 속도만이 아닙니다.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그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가에 따라, 우리는 진정한 평온의 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만의 ‘마음의 방황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곳으로의 길’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자주 걸을 수 있느냐가, 결국 우리의 하루를, 나아가 인생의 결을 바꾸어 놓습니다. 요즘은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그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병’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자기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억지로 감정을 누르거나 애써 무시하기보다는,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 주는 것. 그것이 결국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아닐까요? 행복은 거창한 성취의 이름이 아닙니다. 어쩌면 매일 조금씩 걷는 산책, 내 마음이 방황하지 않는 그 유일한 시간 속에 이미 깃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마음을 조용히 쉬게 해줄 길로 들어서는 그 문을, 오늘은 열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호에는 (사)와우컬처랩 이현진 대표의 선정 도서와 추천사가 함께 실립니다. 

 📚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반비, 2017

정신의 발걸음

하지만 루소가 걸을 기회를 놓치는 법은 없었다. "그 정도로 사색하고 그 정도로 존재하고 그 정도로 경험하고 그 정도로 나다워지는 때는 혼자서 걸어서 여행할 때밖에 없었던 것 같다. 두 발로 걷는 일은 내 머리에 활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까, 몸이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고 할까. 시골 풍경, 계속 이어지는 기분 좋은 전망, 신선한 공기, 왕성한 식욕, 걷는 덕에 좋아지는 건강, 선술집의 허물없는 분위기, 내 예속된 상태와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의 부재. 바로 이런 모든 것이 내 영혼을 속박에서 풀어주고, 사유에 더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나를 존재들의 광활한 바다에 빠지게 해준다. (p.41)


걸음 하나하나가 생각이 되고, 길이 된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를 통해 세상을 읽고 자신을 발견한다.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시간이고, 인간과 세계를 잇는 행위다. 걷는다는 것은 길 위에서 잊혀졌던 감각을 되찾는 여정이며,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행위다. 이현진 대표
  

📚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018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 ...(중략)... 

나는 실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그는 과거를 뒤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을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변과 내부에 확립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묵은 법칙이 확대되고 더욱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 유리하도록 해석되어 그는 존재의 보다 높은 질서를 허가받아 살게 될 것이다. (p.477)

숲과 호숫가, 소로는 자연 속에서 단순한 하루를 살았다. 고요한 시간, 자발적 고독, 문명의 소음을 뒤로 한 평온. 그는 자연과 함께 자유를 느끼고, 삶의 본질을 성찰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 물음은 여전히 선명하다.  이현진 대표


📚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창비, 2024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무거운 무력감과 섀도복싱해야 하는 이들을. 마치 생명이 있는 어떤 것의 목을 조르듯 내 마음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을 천천히 죽이며 진행되는 상실을, 걔를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가르쳐주었다. (p.156)

창경궁 대온실, 100년을 품은 공간. 김금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곳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복원의 손길은 상처와 기억을 천천히 드러낸다. 대온실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그곳에서 삶과 역사가 다시 이어지고, 고통 속에서도 연결의 가능성을 품는다. 복원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여정이다.  이현진 대표


📚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문학동네, 2024

전원 스위치라도 켜진 듯 갑자기 빛을 발하는 별이 있는가 하면 수명이 다해가는 전구인 양 깜박이는 별도 있었으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별과 속절없이 추락하는 별도 있었다. 인간의 셈법으로는 추정이 무의미한 먼 과거를 떠도는 별들이었다. 시간을 초월하여 지구의 밤하늘에 도달한 저 별빛들이 꺼지지 않는 한, 세상의 모든 아픔은 결국 다 사라질 것만 같다는 낙관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밤....

그러고 보면 밤은 언제나 위장에 재능이 있었다. (p.171)

「빛의 호위」에서 뻗어나간 이 이야기는 전쟁과 분쟁의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는다. 카메라를 든 권은과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은 고통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 조해진은 폭력의 세계 속에서도 스며드는 희망과 이어지는 연대를 보여준다. 그 희망은 멜로디처럼 계속 흐른다.  이현진 대표





📺  노자 『도덕경』 I 고전5미닛 (6:37)

*유료 협찬 콘텐츠로 2025.7.31까지 시청 가능합니다. 


📺 나답게 산다는 건  I 전성기TV (7:57)


📺  전영애교수 에피소드2 - 산다는 건 I 지관서가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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