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이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도착해있네요. 그리고 십이월의 첫 레터입니다. 안녕하세요, 모두?
몸은 한 해의 끝자락에 도착했어도, 마음은 아직 저 분주한 한 해 가운데서 정신없이 달려오는 중인지 열두 달을 보내고 저물어가는 한 해가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네 계절을 보내왔는지, 무엇을 의지해 버텨왔던지, 어떤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고 또 어떤 것은 그리움으로 남았는지.
다만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들이 홀쭉해졌습니다. 툭하면 겨울바람이 요란히 흔들어 가까스로 남아있던 나뭇잎마저 떨어트립니다. 그 풍경에, 묵은 것은 움켜쥐지 말고 흘려보내야 한다고, 괜스레 해석을 덧붙입니다. |
|
|
낮이 점점 짧아지고 밤이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하루 중에 어두운 시간이 많아집니다. 길어진 겨울 그림자 속에서 자연스레 시야가 좁혀지고, 스스로를 살피게 되는 계절입니다. 자신과 다정하고, 따스하고 훈훈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
|
책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다 읽지 못한 신간들과 세월의 때가 잔뜩 탔어도 버리지 못하는 고전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저장된 플레이리스트도 그렇네요. 새로 발견한 곡들과 아주 오래도록 카세트테이프가 CD로 변하고, MP3를 거쳐 스트리밍 서비스로 변해와도 늘 찾게 되는 옛 음악들이 함께 놓여있습니다.
신기하지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고 또 온 적 없듯이 사라지는데도, 어떤 것들은 여전히 그 시간 그 자리에,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하게 남습니다. 책이 고픈 날, 책장 앞에 서서 두리번두리번 책을 고르다가도 참 이상하지요, 끝내 손길이 가닿는 건 오래된 책입니다. 고전 책들. 수십, 수백, 때로는 수천 년을 견뎌온 이 책들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단순히 오래됐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겠습니다. |
|
|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고전(Classic)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최고 등급의, 가장 높은 지위나 중요성을 지닌; 공인된 기준이나 모범을 이루는; 지속적인 관심과 가치를 지닌."
쉽게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시간의 시험을 통과한 것." 백 년 전 사람들에게도 필요했고, 현재의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아마 백 년 후 사람들도 필요로 할 것.
도대체 무엇이 옛것들 중에 그것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 걸까요?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책에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전의 14가지 정의를 내놓았습니다. 그중 특히 흥미로운 세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
|
칼비노의 첫 번째 정의: “다시금 읽게 되는 책”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지금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는 책, ‘처음 읽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책.”
일반적인 소설은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를 갖고 있어 한 번 읽으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다시 읽을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반면, 고전의 위대한 소설들은 깊은 이해를 요구합니다. 문장 속에는 미묘한 뉘앙스와 상징이 숨어 있어 독자는 처음 읽는 중에 많은 부분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혹은 네 번까지 다시 읽으며 작품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위대한 개츠비》. 이 작품의 핵심인 “아메리칸 드림(부와 지위를 향한 허망한 추구)”은 피상적으로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서술 방식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복잡한 문체와 신뢰하기 어려운 화자의 시선이 결합해 독자들은 작가의 의도와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피츠제럴드 자신도 “모든 서평 중, 아무리 열광적인 것조차도 이 책이 진정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작품의 메시지가 문자적 의미를 넘어선다면, 독자가 행간을 읽어야 하기에 자연스레 다시 읽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
|
|
칼비노의 여섯 번째 정의: “아직 다 전하지 못한 말을 품은 책”
“고전이란 독자에게 아직 다 전하지 못한 말을 언제나 품고 있는 책.”
언제 읽어도 새로운 통찰을 주는 책은 결코 시대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그런 책은 당연히 “고전”이라 불릴 만합니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인류 역사상 오래된 문학작품 중 하나이지만 지금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단순히 “보편적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쉽지만, 사실 대부분의 책이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지 않나요. 고전의 진정한 생명력은 “독창성”에 있습니다. 《오디세이아》는 “최초의 서사 구조”를 갖춘 작품으로, 이후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준 원형이 되었습니다.
또한, 고전 작품 속 의미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독자가 처한 시대와 삶의 경험이 달라지면, 같은 문장도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고대인에게는 신과 인간의 이야기로 읽혔던 작품이, 오늘의 독자에게는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다가오듯 말입니다. 고전은 매번 새롭게 말을 건네며, 독자의 시간과 함께 끊임없이 확장되는 텍스트입니다. 그렇게 고전은 문학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전반에도 깊은 흔적과 질문을 남깁니다. |
|
|
칼비노의 여덟 번째 정의: “비평을 견디는 책”
“고전이란 끊임없이 비평의 구름을 만들어내지만, 그 구름의 먼지를 언제나 털어낼 수 있는 작품.”
고전은 언제나 비평과 논쟁의 중심에 있습니다. 끊임없는 해석과 재평가의 대상이며, 따라서 활발한 논의가 이어집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전통 교육과정에서 고전이 지나치게 우선시된다는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또, 일부는 고전이 “죽은 백인 남성”이 쓴 유럽 중심의 작품이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어떤 고전들은 오늘의 기준에서 분명 차별적이거나 모욕적인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더 많은 소수자 문학과 다양한 관점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특정 고전이 시대적 편견에 갇혀 비판의 “구름”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그런 작품은 오늘의 의미에서 진정한 고전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비평이 작품의 본질을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고전이 이러한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고전이 모두 백인 남성의 작품만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토니 모리슨, 제임스 볼드윈, 랭스턴 휴스 같은 흑인 작가들의 작품도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들의 문학은 인간 경험의 깊이를 편견 없이 탐구합니다. 이런 작품들이야말로 고전의 이름에 걸맞겠지요. 고전을 둘러싼 비평과 논쟁은 그 작품을 오히려 더 살아 있게 만듭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작품은 여전히 대화 속에 존재합니다. |
|
|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고전은 문학 장르 전체에 영감을 주는 선구자이자 길잡이입니다. 오늘날의 거의 모든 현대소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고전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고전을 읽으면 현대 문학 속에 숨어 있는 그 흔적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고전은 우리에게 “지혜”를 건넵니다. 지식은 ‘무엇’을 알려주지만, 지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이 수백, 수천 년 동안 고민해 온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하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쉬운 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전은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입니다. |
|
|
고전 문학이 그러하듯, 음악에도 시간을 견뎌낸 작품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시대와 상관없이 “고전 음악”이라고 부르지요. 그중에서도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음악은 모든 서양 클래식 음악의 (어쩌면 그 이후의 모든 음악의)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바흐 이후 모든 작곡가는 그의 음악을 연구하고 배우며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만들어냈을 테니까요. 마치 우리가 처음 언어를 배우듯이요.
이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겠지요.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음악가가 연주하고 비평가들이 해석하며, 청중이 각자의 시대에서 다시 듣고 또다시 들을 때마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새 얼굴을 보여줍니다. 시대의 취향이 바뀌어도, 기술이 발달하여 감상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도, 여전히 청자에게 새로운 감정과 사유를 건넵니다.
바흐의 많은 명작 중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 감상을 추천해 드립니다. 한 가지 단순한 주제가 30개의 변주를 거치며 무한히 확장되는 “변주곡 형식”의 작품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한 백작을 위해 작곡한 곡입니다. 300살이 다 되어가는 이 오래된 음악은, 고전 문학이 그러하듯 시대마다 새롭게 읽힙니다. 청자의 마음 상태, 나이, 계절, 시간에 따라 매번 새 음악으로 다가옵니다. |
|
|
특히 이 곡은,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의 1981년 녹음 버전으로 감상하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그는 1955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이 곡을 녹음한 뒤, 생의 마지막 해인 1981년 다시 같은 곡을 녹음했습니다. 같은 연주자의 같은 곡이지만 26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두 녹음은 완전히 다른 음악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겠지요. 비교하면서 들어보시는 재미도 클 것입니다.
십이월 어느 날엔, 따뜻한 물 한 잔과 함께 고전 한 권을 펼쳐 들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일찍 찾아오는 이 겨울의 밤을 맞이해보세요. |
|
|
칼비노가 말하는 고전의 14가지 정의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에 대한 14가지 정의를 제시했습니다. 하나하나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1.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지금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는 책. '처음 읽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책. 2. 고전이란 그것을 읽고 사랑한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을 의미하는 책. 그러나 최상의 조건에서 그 책을 처음 발견할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풍요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책. 3. 고전이란 독자의 무의식 속에 특별한 흔적을 남기는 책. 4. 고전이란 처음 읽을 때도 다시 읽는 것 같고, 다시 읽을 때 처음 읽는 것 같은 책. 5. 고전이란 한 번 읽고 나면 영원히 잊히지 않고, 기억 속 구석에 남아 문화적 경험의 일부로 위장하는 책. 6. 고전이란 독자에게 아직 다 전하지 못한 말을 언제나 품고 있는 책. 7.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 우리보다 앞서 읽은 사람들의 흔적을 가지고 오는 책. 그리고 그 책이 통과해 온 문화적 풍경의 흔적도 함께 가지고 온다. 8. 고전이란 끊임없이 비평의 구름을 만들어내지만, 그 구름의 먼지를 언제나 털어낼 수 있는 작품. 9. 고전이란 우연히 듣게 되는 것보다, 직접 읽었을 때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책. 10. 고전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전체를 동등한 부분들로 구성된 우주로 부르는 것처럼, 하나의 우주 그 자체인 책. 11. 고전이란 다른 고전을 대신할 수 없고, 또 고전이 결코 서로를 소진하지 않는 책. 12. 고전이란 우리보다 먼저 오는 책이며, 그 어떤 책들보다도 우선하는 책. 13. 고전이란 현재를 배경 소음으로 강등시키는 책. 물론 그 배경 소음도 방해할 수 없다. 14. 고전이란 배경 소음이 되는 책. 그것도 우리가 그 책과 상반되거나 명백하게 대비되는 현재 상황에 있을 때 말이다.
|
|
|
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어떠셨나요? 당신의 소중한 의견은 저희를 춤추게 합니다🤸♂️ |
|
|
재단법인 止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7길 32 SK관훈빌딩 11층 수신거부
|
|
|
|
|
어느 사이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도착해있네요. 그리고 십이월의 첫 레터입니다. 안녕하세요, 모두?
몸은 한 해의 끝자락에 도착했어도, 마음은 아직 저 분주한 한 해 가운데서 정신없이 달려오는 중인지 열두 달을 보내고 저물어가는 한 해가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네 계절을 보내왔는지, 무엇을 의지해 버텨왔던지, 어떤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고 또 어떤 것은 그리움으로 남았는지.
다만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들이 홀쭉해졌습니다. 툭하면 겨울바람이 요란히 흔들어 가까스로 남아있던 나뭇잎마저 떨어트립니다. 그 풍경에, 묵은 것은 움켜쥐지 말고 흘려보내야 한다고, 괜스레 해석을 덧붙입니다.
낮이 점점 짧아지고 밤이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하루 중에 어두운 시간이 많아집니다. 길어진 겨울 그림자 속에서 자연스레 시야가 좁혀지고, 스스로를 살피게 되는 계절입니다. 자신과 다정하고, 따스하고 훈훈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책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다 읽지 못한 신간들과 세월의 때가 잔뜩 탔어도 버리지 못하는 고전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저장된 플레이리스트도 그렇네요. 새로 발견한 곡들과 아주 오래도록 카세트테이프가 CD로 변하고, MP3를 거쳐 스트리밍 서비스로 변해와도 늘 찾게 되는 옛 음악들이 함께 놓여있습니다.
신기하지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고 또 온 적 없듯이 사라지는데도, 어떤 것들은 여전히 그 시간 그 자리에,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하게 남습니다. 책이 고픈 날, 책장 앞에 서서 두리번두리번 책을 고르다가도 참 이상하지요, 끝내 손길이 가닿는 건 오래된 책입니다. 고전 책들. 수십, 수백, 때로는 수천 년을 견뎌온 이 책들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단순히 오래됐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고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고전(Classic)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최고 등급의, 가장 높은 지위나 중요성을 지닌; 공인된 기준이나 모범을 이루는; 지속적인 관심과 가치를 지닌."
쉽게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시간의 시험을 통과한 것." 백 년 전 사람들에게도 필요했고, 현재의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아마 백 년 후 사람들도 필요로 할 것.
도대체 무엇이 옛것들 중에 그것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 걸까요?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책에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전의 14가지 정의를 내놓았습니다. 그중 특히 흥미로운 세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칼비노의 첫 번째 정의:
“다시금 읽게 되는 책”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지금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는 책, ‘처음 읽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책.”
일반적인 소설은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를 갖고 있어 한 번 읽으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다시 읽을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반면, 고전의 위대한 소설들은 깊은 이해를 요구합니다. 문장 속에는 미묘한 뉘앙스와 상징이 숨어 있어 독자는 처음 읽는 중에 많은 부분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혹은 네 번까지 다시 읽으며 작품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위대한 개츠비》. 이 작품의 핵심인 “아메리칸 드림(부와 지위를 향한 허망한 추구)”은 피상적으로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서술 방식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복잡한 문체와 신뢰하기 어려운 화자의 시선이 결합해 독자들은 작가의 의도와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피츠제럴드 자신도 “모든 서평 중, 아무리 열광적인 것조차도 이 책이 진정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작품의 메시지가 문자적 의미를 넘어선다면, 독자가 행간을 읽어야 하기에 자연스레 다시 읽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칼비노의 여섯 번째 정의:
“아직 다 전하지 못한 말을 품은 책”
“고전이란 독자에게 아직 다 전하지 못한 말을 언제나 품고 있는 책.”
언제 읽어도 새로운 통찰을 주는 책은 결코 시대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그런 책은 당연히 “고전”이라 불릴 만합니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인류 역사상 오래된 문학작품 중 하나이지만 지금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단순히 “보편적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쉽지만, 사실 대부분의 책이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지 않나요. 고전의 진정한 생명력은 “독창성”에 있습니다. 《오디세이아》는 “최초의 서사 구조”를 갖춘 작품으로, 이후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준 원형이 되었습니다.
또한, 고전 작품 속 의미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독자가 처한 시대와 삶의 경험이 달라지면, 같은 문장도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고대인에게는 신과 인간의 이야기로 읽혔던 작품이, 오늘의 독자에게는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다가오듯 말입니다. 고전은 매번 새롭게 말을 건네며, 독자의 시간과 함께 끊임없이 확장되는 텍스트입니다. 그렇게 고전은 문학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전반에도 깊은 흔적과 질문을 남깁니다.
칼비노의 여덟 번째 정의:
“비평을 견디는 책”
“고전이란 끊임없이 비평의 구름을 만들어내지만, 그 구름의 먼지를 언제나 털어낼 수 있는 작품.”
고전은 언제나 비평과 논쟁의 중심에 있습니다. 끊임없는 해석과 재평가의 대상이며, 따라서 활발한 논의가 이어집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전통 교육과정에서 고전이 지나치게 우선시된다는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또, 일부는 고전이 “죽은 백인 남성”이 쓴 유럽 중심의 작품이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어떤 고전들은 오늘의 기준에서 분명 차별적이거나 모욕적인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더 많은 소수자 문학과 다양한 관점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특정 고전이 시대적 편견에 갇혀 비판의 “구름”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그런 작품은 오늘의 의미에서 진정한 고전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비평이 작품의 본질을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고전이 이러한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고전이 모두 백인 남성의 작품만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토니 모리슨, 제임스 볼드윈, 랭스턴 휴스 같은 흑인 작가들의 작품도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들의 문학은 인간 경험의 깊이를 편견 없이 탐구합니다. 이런 작품들이야말로 고전의 이름에 걸맞겠지요. 고전을 둘러싼 비평과 논쟁은 그 작품을 오히려 더 살아 있게 만듭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작품은 여전히 대화 속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고전은 문학 장르 전체에 영감을 주는 선구자이자 길잡이입니다. 오늘날의 거의 모든 현대소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고전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고전을 읽으면 현대 문학 속에 숨어 있는 그 흔적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고전은 우리에게 “지혜”를 건넵니다. 지식은 ‘무엇’을 알려주지만, 지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이 수백, 수천 년 동안 고민해 온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하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쉬운 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전은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입니다.
J.S.Bach "The Goldberg Variations" [ Glenn Gould ] (1955)
고전 문학이 그러하듯, 음악에도 시간을 견뎌낸 작품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시대와 상관없이 “고전 음악”이라고 부르지요. 그중에서도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음악은 모든 서양 클래식 음악의 (어쩌면 그 이후의 모든 음악의)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바흐 이후 모든 작곡가는 그의 음악을 연구하고 배우며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만들어냈을 테니까요. 마치 우리가 처음 언어를 배우듯이요.
이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겠지요.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음악가가 연주하고 비평가들이 해석하며, 청중이 각자의 시대에서 다시 듣고 또다시 들을 때마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새 얼굴을 보여줍니다. 시대의 취향이 바뀌어도, 기술이 발달하여 감상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도, 여전히 청자에게 새로운 감정과 사유를 건넵니다.
바흐의 많은 명작 중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 감상을 추천해 드립니다. 한 가지 단순한 주제가 30개의 변주를 거치며 무한히 확장되는 “변주곡 형식”의 작품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한 백작을 위해 작곡한 곡입니다. 300살이 다 되어가는 이 오래된 음악은, 고전 문학이 그러하듯 시대마다 새롭게 읽힙니다. 청자의 마음 상태, 나이, 계절, 시간에 따라 매번 새 음악으로 다가옵니다.
J.S.Bach "The Goldberg Variations" [ Glenn Gould ] (1981)
특히 이 곡은,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의 1981년 녹음 버전으로 감상하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그는 1955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이 곡을 녹음한 뒤, 생의 마지막 해인 1981년 다시 같은 곡을 녹음했습니다. 같은 연주자의 같은 곡이지만 26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두 녹음은 완전히 다른 음악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겠지요. 비교하면서 들어보시는 재미도 클 것입니다.
십이월 어느 날엔, 따뜻한 물 한 잔과 함께 고전 한 권을 펼쳐 들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일찍 찾아오는 이 겨울의 밤을 맞이해보세요.
칼비노가 말하는 고전의 14가지 정의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에 대한 14가지 정의를 제시했습니다. 하나하나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1.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지금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는 책. '처음 읽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책.
2. 고전이란 그것을 읽고 사랑한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을 의미하는 책. 그러나 최상의 조건에서 그 책을 처음 발견할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풍요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책.
3. 고전이란 독자의 무의식 속에 특별한 흔적을 남기는 책.
4. 고전이란 처음 읽을 때도 다시 읽는 것 같고, 다시 읽을 때 처음 읽는 것 같은 책.
5. 고전이란 한 번 읽고 나면 영원히 잊히지 않고, 기억 속 구석에 남아 문화적 경험의 일부로 위장하는 책.
6. 고전이란 독자에게 아직 다 전하지 못한 말을 언제나 품고 있는 책.
7.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 우리보다 앞서 읽은 사람들의 흔적을 가지고 오는 책. 그리고 그 책이 통과해 온 문화적 풍경의 흔적도 함께 가지고 온다.
8. 고전이란 끊임없이 비평의 구름을 만들어내지만, 그 구름의 먼지를 언제나 털어낼 수 있는 작품.
9. 고전이란 우연히 듣게 되는 것보다, 직접 읽었을 때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책.
10. 고전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전체를 동등한 부분들로 구성된 우주로 부르는 것처럼, 하나의 우주 그 자체인 책.
11. 고전이란 다른 고전을 대신할 수 없고, 또 고전이 결코 서로를 소진하지 않는 책.
12. 고전이란 우리보다 먼저 오는 책이며, 그 어떤 책들보다도 우선하는 책.
13. 고전이란 현재를 배경 소음으로 강등시키는 책. 물론 그 배경 소음도 방해할 수 없다.
14. 고전이란 배경 소음이 되는 책. 그것도 우리가 그 책과 상반되거나 명백하게 대비되는 현재 상황에 있을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