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첫날입니다. 한해의 절반을 반듯하게 접어 보내고 남은 절반의 시작점 위입니다. 2026년의 반절, 잘 보내셨나요? 시간은 늘, 돌아보는 눈길에는 쏜살같으나 내다보는 눈길에는 지레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낮으로 많이 무더운 요즘이네요. 대기도 뜨겁고 땅까지 열을 밀어 올리니 쉬이 몸과 마음이 지치기 쉬운 때인 것 같습니다. 소서(小暑, 7월 6일)를 앞두고 있으니 아직 남은 무더위가 한참이겠지요. 갈수록 변화의 폭이 극심해지는 날씨 앞에서도 자기 돌봄은 절실합니다. 스스로 잘 챙겨주고 잘 쉬어주고 잘 재워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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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체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백을 우리는 무엇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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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알고리즘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 역설적이게도 왜 사람들은 명상이나 종교, 무속적인 것에 더 열광할까요? 오늘은 세계 곳곳의 현장을 직접 발로 밟으며 미래를 읽어내는 역사학자 이병한 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AI가 인간의 이성을 대체하는 거대한 문명 교체의 시기, 인간은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백을 무엇으로 채우며 살아가야 할지, 조용히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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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옛 수도 개봉(開封·카이펑)에 다녀왔어요. 새로 구상하고 있는 미래 문명 3부작을 쓰기 위해서요. 제가 볼 때 인류 문명은 지금 세 번째 단계로 진화 중인데, 첫 번째가 농업 문명이었고, 두 번째가 산업 문명이었어요. 세 번째가 지금 '디지털 문명' 'AI 문명'이죠. 그 초입에 있다고 봅니다.
개봉은 농업 문명의 표준이 만들어진 현장입니다. 그 패러다임이 완성된 때가 송나라였고요. 과거제도, 성리학, 지폐 같은 것들이 그때 만들어진 겁니다. 뿌리부터 천착해 보고 싶어서 농업 문명 편을 쓰려고 해요.
여름엔 뉴욕으로 갑니다. 뉴욕은 산업문명의 패러다임을 완성해 놓은 현장이지요. 거기서 앞으로의 미래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파이낸스는 어떻게 작동할까, 거버넌스는 어떨까 이런 걸 생각해 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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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책 '아메리카 탐문'을 통해 보신 미국의 변화가 뭔가요? "한국에는 돌파구가 전혀 안 보이는데, 미국에는 뭔가 변화가 시작됐구나 싶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정치 교체가 아니라 문명 교체입니다. 지금 '뉴 아메리카(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는 무대에 오른 상징적 플레이어일 뿐, 설계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알렉스 카프, JD 밴스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코드'가 헌법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이 정당을 대신하는 세계, 자유-민주-공화국에서 디지털-기독교-제국으로 변하고 있는 미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Q. 특히 피터 틸을 가장 주목하셨는데, 그의 비전이 뭔가요? "피터 틸은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팔란티르 테크놀로지스의 설립자로, 실리콘밸리의 핵심 인물입니다. 그는 벤처캐피탈리스트이자 동시에 정치 철학자로서 수십 년간 미국 정부 체제 전체를 개편하려는 구상을 펼쳐왔습니다. 그가 1998년 페이팔을 창업할 때부터 꿈꿔온 게 있습니다. 관료제 국가의 전면 해체입니다.
그는 선출되지 않은 수십만 공무원이 비대하고 무능한 연방 기구에 똬리를 틀고 앉아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대통령은 4년마다 바뀌지만 FBI, CIA, 국무부, 국방부 고위 관료들은 바뀌지 않거든요.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이들이 실제 정책을 집행하고, 정보를 쥐고, 예산을 다룹니다. 틸이 보기에 이것이 민주주의를 사실상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인 셈이죠.
틸의 목표는 워싱턴에 수십 년째 똬리를 틀고 앉아 어떤 대통령도 쉽게 손대지 못했던 관료 권력 전체를 해체하겠다는 것입니다. DOGE(정부효율부)가 연방 공무원을 대량 해고하고 규제 기관들을 축소하려는 것이 모두 이 맥락입니다. 실제 설계는 틸이 수십 년간 준비해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거로 뽑힌 정치인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진 관료 집단을 코드와 알고리즘으로 대체하겠다는 것. 이것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MAGA의 본질입니다.”
Q. 기술이 중심인 미국이 기독교와 연결되는 게 흥미롭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젊은 테크노 세력은 더는 서양 문명의 핵심을 자유주의나 계몽주의에서 찾지 않습니다. 대신 '서양의 뿌리로 다시 돌아온다면 역시 기독교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계몽주의와 자유주의를 수백 년 해봤더니 사람들이 오히려 불행해졌다고 보는 거예요. 그 해답을 성경적 질서에서 찾고 있습니다. 가족, 공동체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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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탈세속화, 재영성화'라는 개념을 설명해주세요. "세속화란 근대 이후 과학과 이성이 세계를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종교가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난 현상입니다. 20세기 사회학은 이를 문명의 필연적 경로로 봤습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득이 올라갈수록 종교는 희미해진다고요. 그런데 이제 그 명제가 무너졌어요. 세계가 더 종교적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탈세속화(de-secularization)입니다.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의 정치 귀환, 이슬람 부흥, 힌두 민족주의의 팽창, 러시아 정교회의 재건, 한국의 MZ 세대가 무속과 사주명리학, 타로에 열광하는 것 말입니다.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방향은 같아요. 합리성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백을 인간이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Q. AI가 이 흐름을 어떻게 가속할까요? "이 흐름을 AI가 가속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AI가 이성의 영역, 즉 분석하고 계산하고 판단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면, 인간에게 남는 시간과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이성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향하겠죠. 의미, 관계, 초월, 몸의 감각, 공동체 등 이런 영성의 영역으로 말입니다.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이라는 업무 시간은 이성을 발휘하는 시간인데, 그걸 AI가 훨씬 더 잘해 줄 겁니다. 우리는 엄청난 시간을 벌 수 있어요. 하루 16시간 가운데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빼면 텅 빈 8시간을 맞이하게 되는 거죠. 그 시간에 뭘 할까요? 저는 종교인들의 삶에 주목합니다. 그 텅빈 시간을 계속 수행하고 기도하면서 사시잖아요. 그 안에 분명히 깊은 맛이 있어서 하시는 거겠죠.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는 시대의 영성에 대한 추구는 과거의 종교가 그대로 확산되는 것보다 영혼의 갈망을 채워주는 다른 형태의 무언가가 나올 거라고 봅니다. 이미 그러고 있죠.”
Q.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득도(得道)’의 과정도 데이터화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마음이 평화를 얻는 과정, 즉 '열반의 경지'도 뇌파나 심장 상태 같은 데이터로 측정하고 가시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명상 앱이 심박수를 측정하듯 말이죠. 이를 게임처럼 만들어 레벨을 올리고 보상을 주는 구조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즉, 종교의 오래된 구도 구조를 디지털 문명의 언어로 번역하는 무언가가 나올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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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대한민국은 5000만 인구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K-컬처로 대표되는 지금의 대문자 K가 그 결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판을 더 키워야 합니다. 저는 한국의 다음 20년의 목표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시아(United States of Asia)'를 만드는 정도로 크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의 원대한 목표가 있어야 이 지긋지긋한 양당 간의 싸움이라든지 정치 유튜브 소모전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출발점은 미국의 건국 과정에 있습니다. 250년 전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3개 주의 느슨한 연합체였지요. 서로 다른 역사와 이해관계를 가진 주들이 연방이라는 틀 안에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가는 데 200년이 걸렸습니다. 이걸 아시아에 적용해보자는 거지요.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 동남아, 몽골, 중앙아시아까지 디지털 문명의 공동체로 묶어내자는 것입니다.
디지털 문명의 핵심 자원은 '데이터'입니다. 데이터는 땅이나 자원처럼 빼앗을 수 없어요. 데이터를 얻으려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야 합니다. 매력이 있어야 하는 거죠. K-팝·드라마·음식·뷰티는 단순한 문화 수출품이 아닙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고, 한국 플랫폼에 자신의 데이터를 남깁니다. 이것이 디지털 문명의 언어로 번역된 제국의 문법입니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누구를 지배하지 않고도, 데이터가 흘러들어옵니다. 제가 K를 '제국'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유럽연합(EU)이 공동 시장과 화폐라는 '산업문명'의 논리로 묶였다면, 제가 구상하는 아시아 연합은 데이터와 플랫폼이 만드는 '디지털 생태계'입니다. 과거 필라델피아와 뉴욕이 산업문명의 허브였던 것처럼, 서울과 도쿄, 싱가포르, 자카르타가 디지털 문명의 허브 도시로 연결되는 구조를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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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전환되고, AI가 이성의 영역을 대신할 때, 우리의 영혼은 어디로 향할까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올리브 아르디조니(Olive Ardizoni)가 주축이 된 Green-House는 환경 음악(Environmental Music)을 지향하는 앰비언트 프로젝트입니다. 2019년 "Six Songs for Invisible Gardens"로 데뷔한 후, 2021년 Leaving Records에서 발표한 데뷔 앨범 《Music for Living Spaces》는 팬데믹 시기에 제작되었습니다. 일상의 거주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만들어진 이 앨범은 식물과 다양한 생명체에 대한 공감을 북돋는 미니멀 신스 음악을 담고 있습니다.
제목처럼, ‘Sunflower Dance’는 햇빛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와 작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평화로운 정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난 레터에서 소개해 드린 Mort Garson의 《Mother Earth’s Plantasia》에서 영감을 받은 이 곡은 1970~80년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따뜻한 온기를 간직하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쉼과 평온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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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신디사이저의 따뜻한 음색으로 완성한 Green-House의 음악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고, 우리 일상의 거주 공간 속으로 작은 생명들과의 연결을 조용히 초대합니다. 거실과 침실, 작은 작업실 어디에서든 이 음악은 공간을 생명력이 은은하게 피어나는 작은 정원처럼 바꾸어 놓습니다. ‘Sunflower Dance’가 마음에 드셨다면, 음반 전체를 감상해보셔도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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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이, 첫 질문의 답을 찾는 길 위에 어렴풋하게나마 이정표가 되어드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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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어떠셨나요? 당신의 소중한 의견은 저희를 춤추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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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止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7길 32 SK관훈빌딩 11층 수신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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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첫날입니다. 한해의 절반을 반듯하게 접어 보내고 남은 절반의 시작점 위입니다. 2026년의 반절, 잘 보내셨나요? 시간은 늘, 돌아보는 눈길에는 쏜살같으나 내다보는 눈길에는 지레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낮으로 많이 무더운 요즘이네요. 대기도 뜨겁고 땅까지 열을 밀어 올리니 쉬이 몸과 마음이 지치기 쉬운 때인 것 같습니다. 소서(小暑, 7월 6일)를 앞두고 있으니 아직 남은 무더위가 한참이겠지요. 갈수록 변화의 폭이 극심해지는 날씨 앞에서도 자기 돌봄은 절실합니다. 스스로 잘 챙겨주고 잘 쉬어주고 잘 재워주세요.
좀체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백을
우리는 무엇으로
기술과 알고리즘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 역설적이게도 왜 사람들은 명상이나 종교, 무속적인 것에 더 열광할까요? 오늘은 세계 곳곳의 현장을 직접 발로 밟으며 미래를 읽어내는 역사학자 이병한 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AI가 인간의 이성을 대체하는 거대한 문명 교체의 시기, 인간은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백을 무엇으로 채우며 살아가야 할지, 조용히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송나라 옛 수도 개봉(開封·카이펑)에 다녀왔어요. 새로 구상하고 있는 미래 문명 3부작을 쓰기 위해서요. 제가 볼 때 인류 문명은 지금 세 번째 단계로 진화 중인데, 첫 번째가 농업 문명이었고, 두 번째가 산업 문명이었어요. 세 번째가 지금 '디지털 문명' 'AI 문명'이죠. 그 초입에 있다고 봅니다.
개봉은 농업 문명의 표준이 만들어진 현장입니다. 그 패러다임이 완성된 때가 송나라였고요. 과거제도, 성리학, 지폐 같은 것들이 그때 만들어진 겁니다. 뿌리부터 천착해 보고 싶어서 농업 문명 편을 쓰려고 해요.
여름엔 뉴욕으로 갑니다. 뉴욕은 산업문명의 패러다임을 완성해 놓은 현장이지요. 거기서 앞으로의 미래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파이낸스는 어떻게 작동할까, 거버넌스는 어떨까 이런 걸 생각해 보려 합니다.”
Q. 책 '아메리카 탐문'을 통해 보신 미국의 변화가 뭔가요?
"한국에는 돌파구가 전혀 안 보이는데, 미국에는 뭔가 변화가 시작됐구나 싶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정치 교체가 아니라 문명 교체입니다. 지금 '뉴 아메리카(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는 무대에 오른 상징적 플레이어일 뿐, 설계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알렉스 카프, JD 밴스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코드'가 헌법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이 정당을 대신하는 세계, 자유-민주-공화국에서 디지털-기독교-제국으로 변하고 있는 미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Q. 특히 피터 틸을 가장 주목하셨는데, 그의 비전이 뭔가요?
"피터 틸은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팔란티르 테크놀로지스의 설립자로, 실리콘밸리의 핵심 인물입니다. 그는 벤처캐피탈리스트이자 동시에 정치 철학자로서 수십 년간 미국 정부 체제 전체를 개편하려는 구상을 펼쳐왔습니다. 그가 1998년 페이팔을 창업할 때부터 꿈꿔온 게 있습니다. 관료제 국가의 전면 해체입니다.
그는 선출되지 않은 수십만 공무원이 비대하고 무능한 연방 기구에 똬리를 틀고 앉아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대통령은 4년마다 바뀌지만 FBI, CIA, 국무부, 국방부 고위 관료들은 바뀌지 않거든요.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이들이 실제 정책을 집행하고, 정보를 쥐고, 예산을 다룹니다. 틸이 보기에 이것이 민주주의를 사실상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인 셈이죠.
틸의 목표는 워싱턴에 수십 년째 똬리를 틀고 앉아 어떤 대통령도 쉽게 손대지 못했던 관료 권력 전체를 해체하겠다는 것입니다. DOGE(정부효율부)가 연방 공무원을 대량 해고하고 규제 기관들을 축소하려는 것이 모두 이 맥락입니다. 실제 설계는 틸이 수십 년간 준비해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거로 뽑힌 정치인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진 관료 집단을 코드와 알고리즘으로 대체하겠다는 것. 이것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MAGA의 본질입니다.”
Q. 기술이 중심인 미국이 기독교와 연결되는 게 흥미롭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젊은 테크노 세력은 더는 서양 문명의 핵심을 자유주의나 계몽주의에서 찾지 않습니다. 대신 '서양의 뿌리로 다시 돌아온다면 역시 기독교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계몽주의와 자유주의를 수백 년 해봤더니 사람들이 오히려 불행해졌다고 보는 거예요. 그 해답을 성경적 질서에서 찾고 있습니다. 가족, 공동체 말입니다.”
Q. '탈세속화, 재영성화'라는 개념을 설명해주세요.
"세속화란 근대 이후 과학과 이성이 세계를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종교가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난 현상입니다. 20세기 사회학은 이를 문명의 필연적 경로로 봤습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득이 올라갈수록 종교는 희미해진다고요. 그런데 이제 그 명제가 무너졌어요. 세계가 더 종교적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탈세속화(de-secularization)입니다.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의 정치 귀환, 이슬람 부흥, 힌두 민족주의의 팽창, 러시아 정교회의 재건, 한국의 MZ 세대가 무속과 사주명리학, 타로에 열광하는 것 말입니다.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방향은 같아요. 합리성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백을 인간이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Q. AI가 이 흐름을 어떻게 가속할까요?
"이 흐름을 AI가 가속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AI가 이성의 영역, 즉 분석하고 계산하고 판단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면, 인간에게 남는 시간과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이성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향하겠죠. 의미, 관계, 초월, 몸의 감각, 공동체 등 이런 영성의 영역으로 말입니다.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이라는 업무 시간은 이성을 발휘하는 시간인데, 그걸 AI가 훨씬 더 잘해 줄 겁니다. 우리는 엄청난 시간을 벌 수 있어요. 하루 16시간 가운데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빼면 텅 빈 8시간을 맞이하게 되는 거죠. 그 시간에 뭘 할까요? 저는 종교인들의 삶에 주목합니다. 그 텅빈 시간을 계속 수행하고 기도하면서 사시잖아요. 그 안에 분명히 깊은 맛이 있어서 하시는 거겠죠.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는 시대의 영성에 대한 추구는 과거의 종교가 그대로 확산되는 것보다 영혼의 갈망을 채워주는 다른 형태의 무언가가 나올 거라고 봅니다. 이미 그러고 있죠.”
Q.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득도(得道)’의 과정도 데이터화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마음이 평화를 얻는 과정, 즉 '열반의 경지'도 뇌파나 심장 상태 같은 데이터로 측정하고 가시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명상 앱이 심박수를 측정하듯 말이죠. 이를 게임처럼 만들어 레벨을 올리고 보상을 주는 구조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즉, 종교의 오래된 구도 구조를 디지털 문명의 언어로 번역하는 무언가가 나올 것입니다."
Q.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대한민국은 5000만 인구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K-컬처로 대표되는 지금의 대문자 K가 그 결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판을 더 키워야 합니다. 저는 한국의 다음 20년의 목표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시아(United States of Asia)'를 만드는 정도로 크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의 원대한 목표가 있어야 이 지긋지긋한 양당 간의 싸움이라든지 정치 유튜브 소모전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출발점은 미국의 건국 과정에 있습니다. 250년 전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3개 주의 느슨한 연합체였지요. 서로 다른 역사와 이해관계를 가진 주들이 연방이라는 틀 안에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가는 데 200년이 걸렸습니다. 이걸 아시아에 적용해보자는 거지요.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 동남아, 몽골, 중앙아시아까지 디지털 문명의 공동체로 묶어내자는 것입니다.
디지털 문명의 핵심 자원은 '데이터'입니다. 데이터는 땅이나 자원처럼 빼앗을 수 없어요. 데이터를 얻으려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야 합니다. 매력이 있어야 하는 거죠. K-팝·드라마·음식·뷰티는 단순한 문화 수출품이 아닙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고, 한국 플랫폼에 자신의 데이터를 남깁니다. 이것이 디지털 문명의 언어로 번역된 제국의 문법입니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누구를 지배하지 않고도, 데이터가 흘러들어옵니다. 제가 K를 '제국'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유럽연합(EU)이 공동 시장과 화폐라는 '산업문명'의 논리로 묶였다면, 제가 구상하는 아시아 연합은 데이터와 플랫폼이 만드는 '디지털 생태계'입니다. 과거 필라델피아와 뉴욕이 산업문명의 허브였던 것처럼, 서울과 도쿄, 싱가포르, 자카르타가 디지털 문명의 허브 도시로 연결되는 구조를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문명이 전환되고,
AI가 이성의 영역을 대신할 때,
우리의 영혼은 어디로 향할까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올리브 아르디조니(Olive Ardizoni)가 주축이 된 Green-House는 환경 음악(Environmental Music)을 지향하는 앰비언트 프로젝트입니다. 2019년 "Six Songs for Invisible Gardens"로 데뷔한 후, 2021년 Leaving Records에서 발표한 데뷔 앨범 《Music for Living Spaces》는 팬데믹 시기에 제작되었습니다. 일상의 거주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만들어진 이 앨범은 식물과 다양한 생명체에 대한 공감을 북돋는 미니멀 신스 음악을 담고 있습니다.
제목처럼, ‘Sunflower Dance’는 햇빛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와 작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평화로운 정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난 레터에서 소개해 드린 Mort Garson의 《Mother Earth’s Plantasia》에서 영감을 받은 이 곡은 1970~80년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따뜻한 온기를 간직하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쉼과 평온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빈티지 신디사이저의 따뜻한 음색으로 완성한 Green-House의 음악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고, 우리 일상의 거주 공간 속으로 작은 생명들과의 연결을 조용히 초대합니다. 거실과 침실, 작은 작업실 어디에서든 이 음악은 공간을 생명력이 은은하게 피어나는 작은 정원처럼 바꾸어 놓습니다. ‘Sunflower Dance’가 마음에 드셨다면, 음반 전체를 감상해보셔도 좋겠습니다.
이 음악이, 첫 질문의 답을 찾는 길 위에 어렴풋하게나마 이정표가 되어드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