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25] 마음챙김의 봄날

이치훈
2024-02-07


입춘대길 立春大吉, 건양다경 建陽多慶   언 땅 녹이고 만물 되살리는 봄님 찾아드시니, 크게 복되시고 밝은 날들 맞으시며 경사스러운 일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시린 겨울 틈 비집고 곳곳 봄의 기운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자연 속 생명들은 각자 새 봄맞이로 분주합니다. 한결 싱그럽고 포근해진 이 계절의 교향곡 연주에 맞춰,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봄날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마음 챙김 Mindfulness' 이라는 용어, 익숙하시나요? 명상의 핵심적 기제인 '마음 챙김'은 빨리어 ‘SATI’의 번역어로, 자각, 주의, 기억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영국 출신의 불교학자 리즈 데이비스(T.W. Rhys Davids)에 의해 ‘SATI’는 ‘MINDFULNESS’로 처음 영문 번역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마음 챙김’ 또는 ‘알아차림’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음 챙김 명상을 전세계적으로 알린 MBSR(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마음 챙김)의 창시자 존 카밧진(Jon Kabat-Zinn)은 마음챙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지금 이 순간, 대상을 판단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일 때 일어나는 자각’

약 7000여 년 역사를 가진 고대의 전통 수련법인 '명상'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양 사회에 요가를 비롯해 동양의 치유적 문화로써 전해지며, 이후 1970년경 의학, 과학, 심리학 등의 활발한 연구를 통해 각종 정신 장애와 만성 통증, 심장 질환 등에 큰 효과성을 검증하며, 전세계적으로 현대인의 심신 회복과 치유 더불어 개발을 돕는 매우 효과적인 마음 운동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종교적, 신비주의적, 의식적이라는 편견은 최신 학문인 뇌과학의 발달과 서양의 지식인 및 유명인들의 명상에 대한 선호와 제안으로 어느덧 지워지고, 현재 명상은 심리/정서적 치료뿐만 아니라 의료, 교육, 스포츠, 문화 등 사회 곳곳에서 현대인이 겪고 있는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써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이른바 명상의 대중화와 가치적 실천에 앞장 서고 있는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명상을, 마음챙김을 한층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 명상을 적용해보는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사진 출처 - 조선일보 2023.12.27 기사 "도둑맞은 집중력의 시대… 이제야 모두 명상을 말한다”

존 카밧진 (Jon Kabat-Zinn)

미국 메사추세츠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MBSR(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마음 챙김 명상) 창시자


존 카밧진은 1979년 메사추세츠 주립대학병원에서 ‘마음 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MBSR)’ 8주 프로그램을 개설해, 우울증, 불안증, 만성 통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약물보다 나은 치료 효과를 검증하며, 프로그램의 성공과 함께 명상의 확산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현재 MBSR 프로그램은 전 세계 800여 병원과 클리닉에서 치료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마음 챙김이 병원을 넘어 학교, 기업, 군대, 스포츠, 문화에 폭넓게 활용되기까지 다리 구실을, 명상의 의학, 과학, 심리학 접목에 앞장서 선구자 역할을 해온 그가 꺼낸 화두는 '외로움'입니다.


“미국 공중보건 최고 책임자가 말하길 오늘날 미국인의 가장 큰 질병은 외로움이라 합니다. 나는 이 외로움이 우울증과 소외감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외로움이 아니라 ‘단절’입니다. 불안과 우울증, 외로움 같은 감정은 모두 단절감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1979년 ‘MBSR 클리닉’을 만든 이유도 우울증, 불안감, 만성통증, 암, 심장병 환자들이 자신과 단절을 극복하고 연결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단절은 조절 장애를 일으키고, 이는 다시 정신이나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연결은 평화와 웰빙, 건강으로 이어지는 생물학적 조절을 향상시킵니다.


세상과도 연결해야 하지만, 먼저 집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연결을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과의 연결에서부터 명상은 시작됩니다. 명상은 내면과 깊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현대 사람들의 마음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 마음을 챙기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명상 수행은 마음 훈련입니다. 마음이 흩어지면 다시 하나로 모아,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명료히 알아차리고, 산만해진 마음을 바로 보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만드는 이야기에 속지 않고, 시간 밖에서 존재하는 현재의 '순수 인식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진 출처 - 웹사이트 "Scott Barry Kaufman

켄 윌버 (Ken Wilber)

미국 작가이자 사상가, 자아초월심리학의 대가

통합연구회(Integral Institute), 통합대학(Integral University) 창립


동양의 깨달음과 서양의 심리학을 통합함으로써 인간 의식의 패러다임을 바꾼, 대중에게는 '무경계'의 저자로 익숙한 켄 윌버(Ken Wilber)는 10대 중반, 노자의 ‘도덕경’을 비롯한 동양사상을 접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되고, 1977년 첫 책 『의식의 스펙트럼(The Spectrum of Consciousness)』을 출간하면서 동서양의 마음과 의식에 관한 서로 다른 이론들과 나아가 마음의 치료와 정신적인 해방에 관한 많은 입장을 정리하였습니다. 그 후 심리학을 비롯한 사회과학과 인문학, 예술, 신학, 종교학, 자연과학 등을 통합하여 인간과 세계의 본질적인 문제와 해결을 향한 통합 이론들을 연구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15살에서 16살 사이였을 때, 처음으로 동양철학을 꽤 깊이 접하고 사토리(깨달음, Satori) 또는 통일된 경험적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비롯한 동양 경전을 읽고 난 뒤 기존 종교의 대부분이 어린아이 같은 신비주의와 근본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신념, 믿음 같은 작은 자아들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작은 자아를 극복해 ‘빅마인드’와 하나 되는 것이 종교 전체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것과 완전히 동일시될 때, 우리는 모든 존재의 근거와 하나가 되어 깊은 일체감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아버지가 하나’라고 한 심오한 체험도 바로 분리를 극복한 하나됨이었습니다.


통합된 마음 챙김을 수행하기 위해 앉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관찰자의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작은 마음을 내려놓을수록 작은 자아를 초월해 크고 거대한 통일된 참나 안에서 안식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형태의 깨어남은 바로 지금 자신의 생각을 목격하고 있는 이 진정한 관찰자를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관찰자가 되면 더 이상 분리된 생각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단순한 사고 장치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관찰의식과 동일시됩니다.


사진 출처 - 한겨례 2023.12.24 기사 "예수께서 오신 뜻은 ‘파격적 환대’를 위해서다

이태후 목사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노스센트럴 흑인빈민사회에서 20년째 사역

서울대학교 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나와 뉴욕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7년을 목회 활동하던 이태후 목사는 왜 꽃길을 두고 빈민 사역을 선택했을까. 이 목사는 6개월간 오직 기도의 시간만 보낸 끝에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의 이웃이 돼라’는 내적 음성을 듣고 2003년 필라델피아의 대표적인 빈민가에 오게 됩니다. 흑인 인권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빈민 지역엔 여전히 흑인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노스센트럴도 주민의 90% 이상이 흑인이고, 45%는 절대 빈곤 상태에 있고, 40%는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 목사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집에 있다가 스무 발 넘는 총소리를 듣기도 하고, 밤늦게 현금인출기 앞에서 권총 강도를 만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20년째 이 동네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점차 동네 터줏대감이 되어가고 있는 이 목사는 이곳에 교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동네에서 아파도 병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전화가 오면 만나주는, ‘움직이는 교회’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는 아이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마약에 손을 대곤 하죠.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형제가 넷인데, 네 형제의 아버지가 모두 다른 아이들도 있습니다. 부모가 있어도 아이들에게 ‘누가 너를 때리면 맞고 있지 말고, 다시는 건드리지 못하게 반 죽여놓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로 총기사고가 너무 빈번하고, 누군가 욕을 하면 주먹다짐으로 가고, 결국 총으로 쏘고, 죽은 사람의 사촌이 다시 보복하면서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 목사는 노동을 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의 중요성과 함께, 폭력이 아닌 사랑의 힘과 같은 윤리의식을 심어주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이 방치한 흑인 빈민들을 돌보는 이 목사는 ‘가슴에 새기고 사는 말이 있느냐’고 묻자 테레사 수녀의 말을 들어 ‘위대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일을 위대한 사랑으로 실천하자’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보냈으니, 크리스천들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는 사람과 같이 울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 먹여주고, 집 없는 사람에게 따뜻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핍박받고 소외되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안아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준 것은 그냥 환대가 아니라 파격적인 환대입니다. 당시엔 종교적 스승이 되려면 사회 통념상 어울려서는 안 될 사람과도 예수께서는 어울렸습니다. 이방인도 만나주고, 몸을 파는 여성도 만나주었습니다. 그렇게 파격적인 환대가 소외된 사람들로 하여금, ‘아, 나도 온전한 인간으로 대접을 받는구나’란 자존감을 갖게 했습니다. 우리는 파격적인 환대를 실천하고 있을까요? ‘너는 못 와!’, ‘너는 여기 올 수 없어!’ 라고 담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위 글은 한겨레 X 플라톤아카데미 ‘함께하니 더 기쁜 삶-일상 고수에게 듣다’ 국내편에 이어 미국에서 6명의 고수들을 만나 이루어진 6편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platonacademy.org/28  

마음 챙김의 봄날을 위한 명상 음악 하나를 공유해 드립니다. 영국의 전자 음악 프로듀서 존 홉킨스(Jon Hopkins)의 2021년 발매된 여섯 번째 정규 음반 《Music for Cychederic Therapy》 중 "Sit Around the Fire" 곡입니다. 이 곡은 미국의 엠비언트 아티스트 East Forest와 고인이 된 영적 수행자 Ram Dass의 나레이션이 함께하는 곡으로, 좁 홉킨스는 다음과 같이 본 곡이 만들어진 과정을 이야기 합니다.


"어느 날 저(존 홉킨스)는 이스트 포레스트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람다스가 타계하기 전 하와이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많이 공개되지 않은 70년대부터 람다스의 강연 녹음본을 세상에 공개하는 권한을 부여받았고, 그것을 저에게 보내며, 그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또한, 그는 그가 녹음한 아름다운 합창 보컬을 포함한 몇 가지 음악 소스를 시작점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헤드폰을 끼고 람다스의 목소리를 머릿속에 넣고, 피아노 앞에 앉아 즉흥적으로 연주를 했습니다. 현재 들으시는 음악이 가장 먼저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람다스의 말에 반응하여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Jon Hopkins with Ram Dass, East Forest - "Sit Around The Fire"
지금 이 순간 대상을 판단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일 때 일어나는 자각, '마음 챙김'을 통해 다시 만나지 않을 이 봄날의 풍요로움과 행복감을 매 순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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