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주제는 ‘실패’입니다. 실패에 관한 해외 고전 소설 세 권과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강연, 실패를 극복하는 심리학 강연, 리처드 도킨스와 그의 지도 교수였던 노블 교수의 토론, 실패가 어떻게 미덕일 수 있는지를 사유한 책의 소개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호에는 필명 '로쟈'로 알려진 이현우 서평가의 선정 도서와 추천사가 함께 실립니다. |
📚『소송』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옮김, 문학동네, 2010) |
당신의 무죄를 증명해보라
"... 이 이야기가 어느 누구에게도 문지기에 대해 판단할 권한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든 문지기는 어디까지나 법에 봉사하는 사람이고 법에 속한 사람이므로 인간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 문지기는 법에 의해 그 직위에 임명된 것이고, 따라서 그의 존엄성을 의심하는 것은 법을 의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K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의견에 동의한다면 문지기가 말한 것은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신부가 말했다. "모든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것을 다만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울한 의견이로군요." K가 말했다. "허위가 세계 질서가 되어 있으니까요." (276~277쪽) |
『변신』과 함께 카프카 문학을 대표하는 『소송』은 무고하게 기소된 요제프 K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 형리들에게 처형당하는 이야기다. 카프카는 첫 장 ‘체포’와 마지막 장 ‘종말’을 동시에 집필함으로써 출구 없는 결말을 설정해놓았다. K와 카프카에게 공통적으로 남은 일은 그 예정된 종말을 최대한 유예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유죄가 되느냐고 K는 묻는다. K는 작가 카프카의 이니셜이면서 우리 모두를 대표한다. ―이현우 서평가 |
K는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알 수 없는 죄로 소송을 당합니다. 이후 부주의하고 우스꽝스러운 감시인들에게 일상을 위협받으며 수많은 계단과 문 그리고 열리지 않는 유리판으로 바깥과 차단된 법원에 들어섭니다. 지엄한 법원의 대기 줄은 무척 길었습니다. 확정적이거나 명료한 것 하나 없이 계속해서 유예되는 판결을 기다리는 K. 그는 법원의 신참으로서 모든 걸 처음부터 배워야만 했죠. 권위적이며 냉소적인 감독관, 도움을 주겠다며 유혹하는 대학생과 법원 고위 관계자의 부인, 5년 동안 소송을 진행 중인 고참 상인,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안기는 중재인 화가, 소송을 질질 끌어가는 변호사 등. 이 모든 만남에서 그는 법적 분쟁에 휘말린, 법원에 관계되거나 소속된 사람들과의 접촉과 마찰로 지쳐갑니다. 특히 위에 인용한 교도소 신부가 들려준 '시골 남자와 문지기' 이야기는 K에게는 혼란과 절망을 선사하지만, 독자에게는 법과 권력 그리고 운명과 구원의 관계를 사유하도록 이끌죠. 이 과정에서 K가 겪는 어떤 결판의 유예, 당위 없는 사건의 암시와 휘말림, 출처 모를 죄의식과 부채감, 불안과 소외와 신경 쇠약은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처럼 왜곡하며 그를 수렁으로 빠트립니다. 이 '법'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작품은 법과 권력의 부조리함에 대한 고발이자 자기 구원의 실패 서사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와 관료주의에서 상호 몰이해와 무관심 그리고 소외도 잘 드러나죠. 나아가 고통의 이유 없음, 근원 망각에 대한 실존적 물음으로도 해석할 수 있죠. 실제 카프카의 친구이자 유언 집행자였던 비평가 막스 브로트에 의하면, 『소송』이 처음에는 K가 은행 돈을 횡령하는 설정이었는데 카프카가 작중 인물에게 혼란과 압박을 더 하기 위해 이 설정을 없앴다고 말했습니다. 또 신화적 메타포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카프카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재해석한 단상을 쓰기도 했습니다. 인간에게 불을 건네주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산 프로메테우스. 그는 독수리들에게 간을 쪼아 먹히다가 묶여 있던 바위에 파고들어 한몸이 됩니다. 세월이 지나 그의 배반은 그를 벌한 신, 독수리, 그 자신에게도 잊히고 끝내 이유를 알 수 없게 된 진실에 모두 지쳐버리며 상처도 아물어버립니다. 결국 불가사의한 바위산만 남은 것이죠. 단상 끝에 카프카는 이런 당위적 설명을 답니다. "전설은 불가사의한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전설은 진실을 기반으로 생기기 때문에 다시 불가사의한 것으로 끝나야 한다." 『소송』에도 '전설'이 나옵니다. 초조한 K가 중재인 화가에게 실질적인 무죄 판결 사례를 문의하는 장면입니다. 그런 사례가 있었다지만 최종 판결은 비공개라 열람할 수 없고 따라서 믿을 수 있지만 입증할 수 없는 전설과 같다고 말하죠. "그래도 그것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전설에는 어느 정도 진실도 들어 있고, 또 매우 아름답기도 합니다." 전설은 우리가 고개를 들어 불가사의로 남은 바위산을 오래 응시하는 행동을 끌어내고 진실을 사유하게 합니다. 문학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에서는 '실질적 무죄, 외견상 무죄, 그리고 판결 지연'만이 석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나옵니다. 실질적 무죄가 전설이라면, 나머지 두 방법은 어떤 의미일까요? 무죄란, 아직 죄가 없는, 죄를 저지르기 전의 초조한 기다림, 유예된 형벌을 말하는 걸까요? 나아가 우리가 죄, 실패, 더러움, 부끄러운 일을 판단하는 기준과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
📚 『모비 딕』 허먼 멜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19) |
모비 딕, 운명의 작살이 뿌리내릴 대상
오오, 남들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남에게 불을 붙이려면 성냥 자체도 파괴되어야 한다! 나는 과감하게 내가 원하는 일을 했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는 악마가 붙은 미치광이다. 나는 미쳐버린 광기다. 그 사나운 광기는 자신을 이해할 때에만 잠잠해진다. 나는 팔다리가 잘릴 거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리고 아아! 나는 다리를 잃었다. 이제 나는 내 다리를 자른 놈의 몸을 잘라버릴 거라고 예언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예언자이자 그 실행자가 된다. 그것은 위대한 신들 이상이다. 위대한 신들도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었다. 위대한 신들이여, 나는 당신들을 비웃고 야유한다. (222쪽) |
『모비 딕』은 두 가지 서사로 구성된다. 하나는 흰고래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극이다. 그리고 화자 이슈메일과 작살잡이 퀴퀘그 사이의 우정이 다른 하나다.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는 극대화된 자존감의 화신으로서 태양이 자신을 무시하면 태양에게도 맞서겠다는 인물이다. 『모비 딕』은 에이해브의 비극적 실패와 이슈메일의 생존 서사를 대비시킴으로써 멜빌은 민주주의적 세계관의 문학적 형상을 제공한다. ―이현우 서평가 |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자 영문학을 대표하는 대항해 소설, 비극적 서사시 계보를 잇는 위대한 소설, 소설을 빙자한 고래학이자 해양학, 19세기 전반의 도덕, 종교, 경제, 문화를 살필 수 있는 백과사전. 이것들은 모두 소설 『모비 딕』에 바쳐진 수식입니다. 흰고래라는 상징에 자기가 겪고 사유한 세상을 모두 적어내려는 작가의 야심이 작품 전반에 드러납니다. 실제로 대서양에서 선원 생활을 하고 도서관을 쏘다니며 문헌 연구를 거친 작가는 작품 첫머리에 고래에 관한 문헌 발췌록을 싣고, 서양 고전 160여 편을 작중인물이 설명하거나 패러디하여 ‘거대한 흰고래 모자이크’를 완성합니다. 작중 화자인 이슈메일, 그리고 코코보코 섬의 왕자이자 사나운 작살잡이인 퀴퀘크와의 우정은 종교와 국가와 피부색의 국경을 초월합니다. 퀴퀘크는 거칠기는 해도 허위에 찌든 인간군상과 달리 진정성, 용기, 자기만의 품위를 갖고 승선합니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에게 다리를 잃고 복수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질 각오로, 선원들은 이익을 목표로 포경선 피쿼드호에 탑승하죠. 이들은 함께 ‘고래’라는 공공선(善)을 목표로 험난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과 인간, 문명과 야만, 하늘과 땅 등. 모든 수직적 이분법을 가로지르며 수평선에서 솟구치는 물줄기, 각자의 희디흰 선을 마주합니다. 물줄기는 크게 ‘자기 증명, 이익, 모험, 복수’의 갈래로 힘차게 상승했다가, 흔들리며 멈추고 이내 다시 떨어지며 바다에서 합쳐지죠. 우리에게 익숙한 성과주의로 판단하면, 작중인물들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슈메일은 고래잡이 경력을 쌓거나 큰돈을 벌지 못했고, 퀴퀘크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선원들과 함께 바다에 삼켜졌으며, 에이해브 선장은 광기 어린 복수심으로 배와 선원들을 잃고 파멸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기 앞의 운명을 살아내고 기꺼이 실패했습니다. 고래가 뿜어낸 물줄기는 생의 확고한 뿌리이자 작살이 될 만큼 강렬했으니까요.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는 에이해브. 그처럼 자기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을 마주하는 사람, 그리고 그 순간에 결단을 내려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당신은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인 적이 있나요? 그 실패는 생의 서사시를 어떻게 구성하고 있나요? |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김선형 옮김, 문학동네, 2012) |
나의 고독과 복수와 실패를 다하리라
그의 희망을 파괴하긴 했으나, 나 자신의 욕망은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영원히 뜨겁게 달아오를 허기진 욕망이었다. 여전히 사랑과 우정을 갈구했지만 계속 거절당했다. 그런데 이것이 부당하지 않은가? 전 인류가 내게 죄를 지었는데, 나만 유일한 범죄자라는 멍에를 써야 하는가? (301쪽) |
『프랑켄슈타인』은 두 개의 실패 서사다. 겉 이야기는 북극의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기 위해 탐험에 나선 월튼 선장의 이야기이고, 속 이야기는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창조한 괴물 때문에 겪게 된 복수극이다.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은 신의 영역을 넘보고자 한 인간의 비극이자 생명 창조에서 여성을 배제하려 한 남성의 비극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교훈은 월튼 선장이 탐험을 포기하고 기수를 고향으로 돌리는 데서 확인된다. ―이현우 서평가 |
📺 성공과 실패 대신 '변화'하는 삶으로 - 손원평 소설가, 영화감독 I 세바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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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기 위해 행하는 시도에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변화하기 위해 내디딘 발자국 자체가 바로 성공이니까요. 베스트셀러 소설 『아몬드』의 손원평 소설가. 그는 20대 대학 시절 영화 평론으로 상을 받았고 영화 학교에 진학하여 만든 단편 영화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자신의 재능이 빛을 발할 거라 확신했죠. 하지만 이후 10여 년 동안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죠.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가명을 쓰며 여러 공모전에 투고했지만 모두 떨어졌습니다. 장벽에 갇혀 깊은 바다에 가라앉는 느낌. 끝나지 않을 실패의 시간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손원평 작가는 글과 영화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를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 '나는 적어도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삶과 글을 써왔다고 합니다. 매번 고민과 의심이 들지만, 그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기 위해 노력하면서요. |
📺 실패 관리 매뉴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내는 법! - 김경일 심리학자 I 사피엔스 스튜디오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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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할 수 있는 용기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김경일 심리학자는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심리를 분석하여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사실 성공보다 중요한 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하며 성장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연구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실패할 때 오히려 학습력을 향상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그것도 더 많이!)'라는 말이 증명된 거죠. 성장도 하고 싶고 실패도 줄이고 싶다면 실패 관리 매뉴얼, 오답 노트를 만드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또 실패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당신이 시험, 발표, 일에 앞서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다면 구체적 해법이 담긴 이 강연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
📺 노블 교수와 도킨스 교수의 세기적 논쟁 현장 "이기적 유전자 시대는 끝났다!" - 플라톤 아카데미TV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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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전자 전달 기계인가 아니면 유전자의 통제자인가 시스템 생물학 분야 선구자인 데니스 노블 교수는 진화적 변화를 유발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유기체'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저서 『생명의 선율에 맞춰 춤춰라』에서 “살아있는 유기체는 유전자를 사용하여 유기체가 필요로 하는 분자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는 쓰임의 대상이지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진실은 정반대라고 주장합니다. 유기체가 세포의 단백질 합성에 도구로 유전자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 자체가 세포의 단백질을 합성하게 만드는 자연 선택적 원인이자 인과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죠. 노블 교수는 이를 반박하며 유기체에 핵심 역할을 하는 유전자는 소수이고 실험을 통해 내부 네트워크가 작동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알아냈다고 합니다. 나아가 유기체가 직접 세포핵에 개입해 자기 유전자를 변형하고 통제한다고 주장하죠. 이어지는 첨예한 과학적 갑론을박을 조금 단순화시켜본다면, 진화론자인 도킨스의 주장은 ‘생명은 결국 유전자를 복제하고 확산하기 위해 생존한다’는 것이며, 노블의 주장은 ‘유전자 자체는 이기적일 수 없으며 생명은 주체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번 호 주제는 ‘실패’입니다. 두 석학의 과학적 진실에 관한 사유와 함께 다음 질문을 생각하며 이 영상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실패는 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더 나은 실패 그리고 더 나다운 실패란 무엇인가? |
🏛️ 실패의 미덕 - 샤를 페펭 I 고전5미닛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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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존재라서 실패하는 인간 오늘의 책, 『실패의 미덕』은 ‘어떻게’ 실패가 전리품이나 보물일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입니다. 저자는 '샤를 페펭', 근래에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철학자이자 작가인데요. 자신의 선택, 자신의 길을 가다 보면 실패도 따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자유롭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자유를 발휘하면서 살다 보면 자신의 가능성을 온전히 펼치면서 자신이 진정 바라는 바에 점점 더 다가서게 됩니다. 니체가 권유하던 “너 자신이 되어라(Werde, wer du bist)”라는 메시지처럼 말이죠. 이게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실패해서 절망하고 계시나요? 페펭이 권하는 ‘위대한 실패’의 여정을 추천합니다. 내 20년 교육 경험을 걸고 단언하건대, 빨리 실패한 후 진정한 질문을 하는 것, 실패 덕분에 깨어나 빨리 고치는 것이, 실패를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그리고 평균 점수라는 작은 성공에 취해 잠들어 있는 것보다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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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말 함부로 당신이 겪는 풍파를 짐작하지 않겠습니다. 함부로 위로하고 격려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무언가를 시도했다는 증거이자, 이전과는 다른 자신을 낳으려 앓고 있다는 증거이자, 더 낮고 깊은 곳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무용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니까요.
그대의 사랑과 함께, 그리고 그대의 창조와 함께, 나의 형제여, 그대의 고독 안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서야 정의가 절뚝거리며 그대를 따라올 것이다. 나의 눈물과 함께 그대의 고독 안으로 들어가라, 나의 형제여. 자신을 넘어서 창조하려 하고, 그렇게 파멸하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옮김, 휴머니스트, 2020 |
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어떠셨나요? 당신의 소중한 의견은 저희를 춤추게 합니다🤸♂️ |
(재)플라톤 아카데미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2길 19 SK에코플랜트 15층 수신거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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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주제는 ‘실패’입니다. 실패에 관한 해외 고전 소설 세 권과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강연, 실패를 극복하는 심리학 강연, 리처드 도킨스와 그의 지도 교수였던 노블 교수의 토론, 실패가 어떻게 미덕일 수 있는지를 사유한 책의 소개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호에는 필명 '로쟈'로 알려진 이현우 서평가의 선정 도서와 추천사가 함께 실립니다.
『변신』과 함께 카프카 문학을 대표하는 『소송』은 무고하게 기소된 요제프 K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 형리들에게 처형당하는 이야기다. 카프카는 첫 장 ‘체포’와 마지막 장 ‘종말’을 동시에 집필함으로써 출구 없는 결말을 설정해놓았다. K와 카프카에게 공통적으로 남은 일은 그 예정된 종말을 최대한 유예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유죄가 되느냐고 K는 묻는다. K는 작가 카프카의 이니셜이면서 우리 모두를 대표한다. ―이현우 서평가
권위적이며 냉소적인 감독관, 도움을 주겠다며 유혹하는 대학생과 법원 고위 관계자의 부인, 5년 동안 소송을 진행 중인 고참 상인,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안기는 중재인 화가, 소송을 질질 끌어가는 변호사 등. 이 모든 만남에서 그는 법적 분쟁에 휘말린, 법원에 관계되거나 소속된 사람들과의 접촉과 마찰로 지쳐갑니다. 특히 위에 인용한 교도소 신부가 들려준 '시골 남자와 문지기' 이야기는 K에게는 혼란과 절망을 선사하지만, 독자에게는 법과 권력 그리고 운명과 구원의 관계를 사유하도록 이끌죠. 이 과정에서 K가 겪는 어떤 결판의 유예, 당위 없는 사건의 암시와 휘말림, 출처 모를 죄의식과 부채감, 불안과 소외와 신경 쇠약은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처럼 왜곡하며 그를 수렁으로 빠트립니다. 이 '법'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작품은 법과 권력의 부조리함에 대한 고발이자 자기 구원의 실패 서사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와 관료주의에서 상호 몰이해와 무관심 그리고 소외도 잘 드러나죠. 나아가 고통의 이유 없음, 근원 망각에 대한 실존적 물음으로도 해석할 수 있죠. 실제 카프카의 친구이자 유언 집행자였던 비평가 막스 브로트에 의하면, 『소송』이 처음에는 K가 은행 돈을 횡령하는 설정이었는데 카프카가 작중 인물에게 혼란과 압박을 더 하기 위해 이 설정을 없앴다고 말했습니다.
또 신화적 메타포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카프카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재해석한 단상을 쓰기도 했습니다. 인간에게 불을 건네주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산 프로메테우스. 그는 독수리들에게 간을 쪼아 먹히다가 묶여 있던 바위에 파고들어 한몸이 됩니다. 세월이 지나 그의 배반은 그를 벌한 신, 독수리, 그 자신에게도 잊히고 끝내 이유를 알 수 없게 된 진실에 모두 지쳐버리며 상처도 아물어버립니다. 결국 불가사의한 바위산만 남은 것이죠. 단상 끝에 카프카는 이런 당위적 설명을 답니다. "전설은 불가사의한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전설은 진실을 기반으로 생기기 때문에 다시 불가사의한 것으로 끝나야 한다."
『소송』에도 '전설'이 나옵니다. 초조한 K가 중재인 화가에게 실질적인 무죄 판결 사례를 문의하는 장면입니다. 그런 사례가 있었다지만 최종 판결은 비공개라 열람할 수 없고 따라서 믿을 수 있지만 입증할 수 없는 전설과 같다고 말하죠. "그래도 그것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전설에는 어느 정도 진실도 들어 있고, 또 매우 아름답기도 합니다."
전설은 우리가 고개를 들어 불가사의로 남은 바위산을 오래 응시하는 행동을 끌어내고 진실을 사유하게 합니다. 문학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에서는 '실질적 무죄, 외견상 무죄, 그리고 판결 지연'만이 석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나옵니다. 실질적 무죄가 전설이라면, 나머지 두 방법은 어떤 의미일까요?
무죄란, 아직 죄가 없는, 죄를 저지르기 전의 초조한 기다림, 유예된 형벌을 말하는 걸까요?
『모비 딕』은 두 가지 서사로 구성된다. 하나는 흰고래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극이다. 그리고 화자 이슈메일과 작살잡이 퀴퀘그 사이의 우정이 다른 하나다.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는 극대화된 자존감의 화신으로서 태양이 자신을 무시하면 태양에게도 맞서겠다는 인물이다. 『모비 딕』은 에이해브의 비극적 실패와 이슈메일의 생존 서사를 대비시킴으로써 멜빌은 민주주의적 세계관의 문학적 형상을 제공한다. ―이현우 서평가
작중 화자인 이슈메일, 그리고 코코보코 섬의 왕자이자 사나운 작살잡이인 퀴퀘크와의 우정은 종교와 국가와 피부색의 국경을 초월합니다. 퀴퀘크는 거칠기는 해도 허위에 찌든 인간군상과 달리 진정성, 용기, 자기만의 품위를 갖고 승선합니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에게 다리를 잃고 복수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질 각오로, 선원들은 이익을 목표로 포경선 피쿼드호에 탑승하죠. 이들은 함께 ‘고래’라는 공공선(善)을 목표로 험난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과 인간, 문명과 야만, 하늘과 땅 등. 모든 수직적 이분법을 가로지르며 수평선에서 솟구치는 물줄기, 각자의 희디흰 선을 마주합니다. 물줄기는 크게 ‘자기 증명, 이익, 모험, 복수’의 갈래로 힘차게 상승했다가, 흔들리며 멈추고 이내 다시 떨어지며 바다에서 합쳐지죠.
우리에게 익숙한 성과주의로 판단하면, 작중인물들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슈메일은 고래잡이 경력을 쌓거나 큰돈을 벌지 못했고, 퀴퀘크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선원들과 함께 바다에 삼켜졌으며, 에이해브 선장은 광기 어린 복수심으로 배와 선원들을 잃고 파멸했으니까요.
그 실패는 생의 서사시를 어떻게 구성하고 있나요?
『프랑켄슈타인』은 두 개의 실패 서사다. 겉 이야기는 북극의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기 위해 탐험에 나선 월튼 선장의 이야기이고, 속 이야기는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창조한 괴물 때문에 겪게 된 복수극이다.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은 신의 영역을 넘보고자 한 인간의 비극이자 생명 창조에서 여성을 배제하려 한 남성의 비극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교훈은 월튼 선장이 탐험을 포기하고 기수를 고향으로 돌리는 데서 확인된다. ―이현우 서평가
시스템 생물학 분야 선구자인 데니스 노블 교수는 진화적 변화를 유발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유기체'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저서 『생명의 선율에 맞춰 춤춰라』에서 “살아있는 유기체는 유전자를 사용하여 유기체가 필요로 하는 분자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는 쓰임의 대상이지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진실은 정반대라고 주장합니다. 유기체가 세포의 단백질 합성에 도구로 유전자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 자체가 세포의 단백질을 합성하게 만드는 자연 선택적 원인이자 인과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죠. 노블 교수는 이를 반박하며 유기체에 핵심 역할을 하는 유전자는 소수이고 실험을 통해 내부 네트워크가 작동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알아냈다고 합니다. 나아가 유기체가 직접 세포핵에 개입해 자기 유전자를 변형하고 통제한다고 주장하죠.
이어지는 첨예한 과학적 갑론을박을 조금 단순화시켜본다면, 진화론자인 도킨스의 주장은 ‘생명은 결국 유전자를 복제하고 확산하기 위해 생존한다’는 것이며, 노블의 주장은 ‘유전자 자체는 이기적일 수 없으며 생명은 주체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실패 그리고 더 나다운 실패란 무엇인가?
자유로운 존재라서 실패하는 인간
오늘의 책, 『실패의 미덕』은 ‘어떻게’ 실패가 전리품이나 보물일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입니다. 저자는 '샤를 페펭', 근래에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철학자이자 작가인데요. 자신의 선택, 자신의 길을 가다 보면 실패도 따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자유롭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자유를 발휘하면서 살다 보면 자신의 가능성을 온전히 펼치면서 자신이 진정 바라는 바에 점점 더 다가서게 됩니다. 니체가 권유하던 “너 자신이 되어라(Werde, wer du bist)”라는 메시지처럼 말이죠. 이게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실패해서 절망하고 계시나요? 페펭이 권하는 ‘위대한 실패’의 여정을 추천합니다.
내 20년 교육 경험을 걸고 단언하건대, 빨리 실패한 후 진정한 질문을 하는 것, 실패 덕분에 깨어나 빨리 고치는 것이, 실패를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그리고 평균 점수라는 작은 성공에 취해 잠들어 있는 것보다 나았다.
-프리드리히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옮김, 휴머니스트,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