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1 #소통] 대화, 나의 옳음과 당신의 옳음이 다를지라도

관리자
2023-04-10

만남과 대화는 개인의 주요한 행복 요소이면서 이 사회의 저변이자 핵심 동력이죠. 코로나 팬데믹, 인공지능의 상용화,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등 개인의 심리부터 기술과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소통의 문제는 더욱 커지고 민감한 사안이 되었습니다. 이번 호 주제는 ‘소통’입니다. 북클럽 오리진 대표 전병근 지식 큐레이터의 선정 도서와 추천사가 함께 실립니다. 그리고 여러 상황과 관계 속에서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 뇌과학자가 분석한 챗GPT와 그 활용법, 소통이 어떻게 실질적 상호작용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는지를 알려주는 책 소개 영상 콘텐츠도 준비했습니다.


📚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4)
도덕심의 계보학: 너의 옳음이 나와 다를지언정

지난 500만 년 동안 우리 인간의 뇌는 크기가 세 배로 커졌고, 이로써 언어 능력은 물론 추론 능력까지 엄청나게 발달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우리 안에 판사나 과학자가 아닌 변호사를 발달시킨 것일까? 그것은 곧 우리 조상들이 이 땅에 적응하는 데에는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누가 어떤 행동을 왜 했는지 그 진정한 이유를 밝히는 것보다는 뇌의 힘을 모조리 동원해 믿고 싶은 것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는 일이 더 중요했다는 뜻은 아닐까? 그 답은 다음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조상들의 생존에 더 중요했던 것은 ‘진실’과 ‘평판’ 중 과연 어느 쪽이었을까? (146쪽)

이 책의 원제목 'The Righteous Mind'를 직역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오늘날 소통을 어렵게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다. 둘의 차이는 왜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우리를 한데 묶고 협력하게 하는 마음이 서로를 불구대천의 적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뿌리까지 파고들어 논증하는 한편 극복의 길을 제시한다. ― 전병근 지식 큐레이터

‘사고’란 개념, 판단, 추리 등을 포괄하며 우리의 선택과 행동의 뼈대를 이룹니다. 그리고 ‘도덕’이란 일반적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사회 규범이나 체계죠.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도덕적 사고’가 일반적 사고와 다르다고 주장하는데요.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이유를 대야 할 필요성이 훨씬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메커니즘은 예상과 달리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다음”이죠.
연구에 따르면 추론력이 없는 갓난아이들은 백지가 아닙니다. 유전자가 초고를 주면 경험이 퇴고하죠. 아기들은 추론할 수 없으나, 착시현상처럼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일 그리고 관계 속에서 착한 역할을 하는 대상에게 끌리며 이를 다른 대상들보다 오래 바라본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의 정치 성향은 유전적 영향과 취향 그리고 소속된 집단의 특성 그리고 타고난 뇌의 구성에 따라 특정 정치 성향과 서사에 강하게 끌리죠.
게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진실보다는 집단적 올바름을 더 신경 쓰는 우리의 본능을 잘 드러냅니다. 일찍이 다윈은 인간의 도덕심이 사회적 본능과 이기심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종교적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교육과 습관으로 나아간다고 보았죠. 뒤르켐은 『사회 계약론』에서 인간을 개별 존재이자 사회의 일부라는 이중적 차원의 존재로 보았고 사회적 본성이 집단선택으로 굳어진다고 했습니다. 역사와 연구가 증명하듯, 우리 중 대다수는 절대 윤리와 상대 윤리 사이에서 단순한 입장을 표방하지만, 실제는 훨씬 다차원적이며 상황적-편파적-호혜적 이타주의자/이기주의자로 살아갑니다. 동질감이 크고 기대 이익이 많으며 운명 공동체로 여겨지는 내집단에서 조건부로 이타심을 발휘하니까요.
그렇다면 개개인의 유전자와 기질, 이해관계,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 등으로 인한 갈등은 해소될 수 없는 걸까요?
농경사회부터 현대사회까지 인간은 각 집단의 대업을 추구해왔고 그 과정에서 적대감을 해소하고 모순된 가치들을 끌어안으며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발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죠. 저자는 도덕적 체계를 여러 사회 구성요소들이 진화한 심리 기제와 연동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이 집단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성향을 적대나 반목이 아닌, 연대와 협력으로 발휘할 것을 촉구하죠. 그 방법이란 더 넓고 본질적인 소속감의 형성과 연대 그리고 각 집단의 교차점과 내부에서 다양성과 개인차를 존중하는 포괄적 다원주의 관점을 갖는 것입니다.
이 책은 ‘도덕심의 계보학'으로 거의 모든 도덕성에 관한 책, 인류학, 생물학, 사회학, 진화 심리학 등 폭넓은 분야의 연구사례를 활용하여 우리가 왜 잘 지내지 못했는지,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사유합니다.

📚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 조 코헤인 (김영선 옮김, 어크로스, 2022)
천국보다 낯선, 타인에게 열려 있으라

매일 우리 앞을 조용히 지나가는, 알 수 없는 화물로 가득 찬 배, 우주 전체가 담긴 컨테이너. 전통문화를 간직한 일부 섬 사람들은 이를 글자 그대로 믿었다. 낯선 이들이 수평선 너머의 다른 차원에서 오는 방문객이라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이 옳다. 낯선 이들은 다른 차원에서 오는 방문객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보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보지도 못한 채 평생을 보낼 수 있다. (129쪽)

초연결 사회에 살면서도 고립과 단절, 외로움을 호소하는 현대인의 소통 장애를 진단하고 구체적인 처방을 제시하는 책이다. 진화 과정에서 키워온 초사회성 덕분에 지금의 성공에 이른 인류가 어쩌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기피하게 되었는지, 이 과정에서 무엇을 잃게 되었는지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저자의 다양한 학습 체험과 각지의 실험적 노력들을 통해 제시한다. ― 전병근 지식 큐레이터

세계 어디에나 공동체가 있고 낯선 이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살아간다는 말은 낯선 이와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를 갖죠. 저자 조 코헤인은 새로운 심리학적 연구와 통찰, 그리고 200만 년 전 유인원이 오늘날 초협력 사회를 이루기까지의 여정, 신화와 설화로 낯선 이가 주는 두려움과 기회를 다방면으로 살펴봅니다.
심리학 연구는 낯선 이와의 대화가 행복, 정신 건강, 신뢰도, 낙관성을 모두 향상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또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결정짓는 요소는 사회관계의 질이며 이는 소통이 깊이와 너비와 관련 있는데, 친밀한 사람과의 소통도 물론 중요하지만 낯선 이와의 소통도 유의미한 변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출퇴근 길에 인사하던 상점 주인에게도요.
그렇다면 우리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을 자기만큼 '온전한 인간'으로는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고독하고 복잡한 존재로 인식하는 만큼 타인의 존재와 그 복잡성 인정해야 온전한 인간으로서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거죠. 반면 비대면 소통과 SNS는 양적 효율과 일시적 결속을 주지만, 사회성과 신뢰도를 낮추고 비인간화를 가속한다고 합니다. 또 거리 두기와 예의 바른 무관심이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오늘날 도심, 과거 식민지를 겪은 나라, 이방인에게 트라우마를 겪는 공동체에서 이런 비신뢰의 벽이 높다고 합니다.
이런 벽은 결국 낯선 이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개인적 신뢰도를 회복하여 허물 수 있습니다. 이는 적대감과 불신을 호기심과 환대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그 실천은 낯선 이와의 눈빛, 표정, 행동 그리고 주의력과 수용력을 활성화하는 직접 대면 소통입니다. 이 책은 타인과의 직접 소통, 대화가 불러일으키는 실질적 효과를 사회와 개인의 차원에서 그리고 흥미로운 시도와 경험담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책장을 덮으며 첫 장에서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살아가는 방편이 아니라 살아남는 전략’이라고 말한 저자의 말을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겠어요.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내 안에 고립된 나와의 대화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가벼운 안부를 나눈 뒤 펼쳐지는 이야기, 그것은 낯선 사람에서 ‘그’가 된, ‘너’가 된, ‘당신’이 된 '우리'의 프롤로그가 아닐까요?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나와 너』 마르틴 부버 (김천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0)
나를 바라보는 네가 비추는 우리의 현존

진실로 '나'는 '너'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매개로 해서만 버젓한 '나'가 된다. 내가 '나'가 됨에 따라 나는 너를 '너'라고 부르게 된다. 온갖 참된 삶은 만남이다. (29쪽)

충실한 현재, 진정한 현재라는 것은 그 안에 현존성과 만남과 관계가 실제로 나타날 때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현재는 '너'가 현존할 때에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31쪽)

만남과 대화에 관한 철학적 탐구를 담은 책이다. 교육학자이자 종교사상가인 저자는 만남과 대화야말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모습임을 논증한다. 세상에는 인격적 만남인 ‘나와 너(Ich-Du)’의 관계와 도구적 응대인 ‘나와 그것(Ich-Es)’의 관계가 존재하는데,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병근 지식 큐레이터


📺 AI가 인간을 대체한다고? 🤖 뇌과학자가 분석한 ChatGPT의 모든 것 - 장동선 뇌과학자 I 조승연의 탐구생활 (16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토론하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함께 답을 이끌어 위해 질문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소크라틱(Socratic) 세미나는 “질문으로 답하라”라는 금언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대중화 시대, 언어 모델 인공지능의 대표자로 자리매김한 챗 GPT. 잘 소통하려면 소크라테스의 말을 숙고해야 합니다. 질문의 요구사항이 명료할수록 그리고 열려 있을수록 챗GPT는 질문자의 의도에 알맞은 답과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이죠.
조승연 박사와 장동선 박사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지만, 인간의 능력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며 긴밀한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공지능이 발전 과정에서 사람들의 불안감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 그리고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미 사회의 모습과 인간의 역할이 바뀌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간의 능력과 지식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 영상에서 주요한 결론 중 하나입니다.
이 글의 두 번째 단락은 챗GPT에게 영상 내용 요약을 맡겨 10초 만에 받은 답을 10분 동안 정보를 검증하고 편집하고 다듬은 결과물입니다. 정보 해석력과 문맥을 짚어내는 속도가 놀랍지 않나요? 사실 챗GPT가 아닌,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영상 핵심은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AI 시대의 소크라테스처럼 한 말입니다. “질문을 질문하라.”

📺 직장 생활 속 소통이 어려운 당신! 말과 표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면? 원활한 소통을 위한 대화 꿀팁!🗣 - 김경일 교수, 김지윤 소장 I 사피엔스 스튜디오 (40분)
회사, 가정, 친구와의 관계에서 소통이 원활하지 않거나 장기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분이라면 이 특강 모음을 시청하세요! 김경일 교수는 생활 속 예시를 들어 소통의 원리와 심리적 역학관계를 설명합니다. 감정을 만들어내는 상황의 힘, 의사소통에서의 인물 유형,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연인과의 대화, 연락이 자주 두절되는 사람의 심리와 소통 개선책 등을 분석하여 관계를 개선하는 구체적인 소통 방법을 제시합니다. 김지윤 소장은 좋은 대화를 위한 3가지 방법으로 '히스토리, 가족, 이슈'를 제시합니다.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나에게도 마음의 지도가 있듯이 타인에게도 마음의 지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소통을 하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그 지도를 살펴보며 마음의 길을 안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요.

🏛️ 소통행위론 - 위르겐 하버마스 I 고전5미닛 (5분)

체계와 생활세계, 그리고 이성적 존재에 대한 반성 

세계적인 비판 이론가 위르겐 하버마스의 책 『소통행위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통 합리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입니다. 하버마스는 사회를 체계와 생활세계로 구분하며, 체계의 전략적 합리성이 생활세계의 소통 합리성을 침해하는 것을 지적합니다. 하버마스는 소통 합리성을 통해 생활세계에서의 의사결정과 소통을 강조하고, 민주적 법치 국가의 실현으로 이성적 존재가 되는 것을 제안합니다. 광범위한 학문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치고 이성적 존재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던지는 『소통행위론』을 소개합니다.


✍️맺는말

다원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어떤 이가 그러한 가치 중 하나를 추구할 때 나는 그 가치를 따르지 않는다 해도 왜 그 사람이 그 가치를 따르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그가 처한 상황에서라면 나 역시 그 가치를 따르게 될 것임을 인정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부터 인간적 이해의 가능성이 싹튼다.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1909~1997)


나와 당신이 다르더라도, 우리와 그가 다르더라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고 또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개념이나 지침, 이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차이를 직시하고 인정하고 상호 존중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안고 소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이야말로 벌린이 말한 '인간의 지평(Human Horizon: 다원주의적 최소 보편 영역)' 안에서 가치들의 양립-비교-통약 불가능성을 끌어안고 공존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옳음이 당신의 옳음과 다를지라도, 내가 당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이 땅의 고독한 존재로서 내가 당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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