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의 주제는 ‘두려움’입니다.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김재인 교수의 선정 도서와 추천사가 함께 실립니다. 책으로는 광포한 시대를 살아가던 청춘의 실존적 불안과 두려움을 형상화한 시집, 치명적인 질병으로 폐쇄된 도시에서 입체적인 인간 군상을 담아낸 고전 소설, 위대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유를 통해 삶을 고찰하는 인문 도서를 소개합니다. 영상으로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에 따라 불안과 두려움을 사유한 철학자의 생애, 그리고 우리가 공포영화를 찾아보는 이유와 숭고의 의미에 관한 미학 강연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문학과지성사, 1991) |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시인의 유일한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다. 가난, 독재, 불의, 실존 속 부조리와 절망을 형상화했다.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고, 하지만 “누구에게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이라고 시인은 쓴다. 쓸쓸하고 날이 궂은 어느 날 문득 시의 몇몇 구절이 떠오르곤 한다. 누구라도 비켜 가기 힘든 청춘의 서정이다. ―김재인 교수 |
기형도의 시 「빈집」에는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에게 글을 쓰는 흰 종이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공포'라는 단어로 아우를 수밖에 없는 어려운 감정이었나 봅니다. 마치 흰 종이를 앞에 두고 취조당하거나 밤새 홀로 유서를 쓰는 일처럼요. 기형도의 시편들에서 공포는 도시를 이루는 질서와 사물에 관한 상상력, 그리고 실존적인 번뇌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런 특성이 드러난 시를 세 편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시 「대학 시절」에서)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시 「바람의 집―겨울판화1」에서)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 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시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에서)
위의 시편들에는 각기 다른 공포가 드러나 있습니다. 위태로운 사회적 정황과 대학 졸업반으로서의 불안한 심정, 유년기의 무서움과 공명하여 더 큰 울음을 빚는 그리움, 얼음을 세공하듯 공포를 유려하게 수식하는 사유와 그것을 전환하는 발상까지. 사람들은 기형도의 "검은 페이지"를 이루는 우울, 비관, 죽음, 그로테스크, 폐쇄적인 질서와 이미지들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일상의 희망이나 기쁨, 삶의 지혜나 참여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고요. 그러나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고 읊조리고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일처럼 어떤 희망은 세계의 어둠과 허위를 드러내고 무너뜨리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런 희망의 실천은 내가 함께 무너질 수도 있다는 자각과 용기가 필요하죠. 그 결과는 빛과 웃음으로 드러나는 진리가 아니라, 어둠과 비명으로 인화되는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직면하고 치열하게 파고든 시선에서 우리는 깊은 연민과 부끄러움 그리고 작지만 단단한 희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언제부턴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무 때나 나는 눈물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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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트』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
신 없는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가
"선생님은 신을 믿으시나요?" 질문은 역시 자연스럽게 나왔다.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뜻입니다. 그러는 것이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은 지가 벌써 오래됩니다." (169쪽)
정말이지 페스트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 바보 같아요. 물론 인간은 희생자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죠. 그러나 사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게 되고 만다면 투쟁은 해서 뭣하겠어요? (333쪽) |
페스트가 발생하자 도시가 폐쇄된다. 의사, 신부, 기자 등 다양한 캐릭터가 각자 죽음의 공포에 맞선다. 코로나19를 맞아 재조명된 이 책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등 실존적 물음을 되짚어보게 한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고민은 더 절박해지기 마련이다. 페스트는 인간 실존을 둘러싼 불변의 조건이다. ―김재인 교수 |
위기의 순간,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재난에 대응할까요? 질병과 재난을 주제로 만들어진 문학 작품들에서도 카뮈의 『페스트』는 늘 첫손에 꼽히는 작품입니다. 치사율 50%의 치명적인 페스트가 퍼져 폐쇄된 도시 오랑, 그곳에서 인간 군상의 다양한 대응 방식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죠. 이 작품은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온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 지에 대한 영감을 줍니다. 질병에 맞서 불굴의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사람들, 그리고 질병에 순응하고 나아가 죽음을 환영하는 사람들, 질병과 도시 그리고 현실에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일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사람까지. 그중에서도 저는 페스트의 전조를 알아차리고 환자에게 헌신하는 의사 리유, 그리고 도시 오란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자원봉사자 결성에 앞장선 타루의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타루가 '신도 믿지 않으면서 왜 헌신적이냐'고 리유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약 어떤 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자기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것을 그만두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파늘루까지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는 이는 없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는 리유 자신도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70쪽)
의사 리우는 인간의 헌신과 불굴의 근거를 세계에 대한 자기 투쟁에서 찾았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패배"라 할지라도, "세계의 질서는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명백할지라도 말이죠. 곧이어 리우가 헌신의 이유를 되묻자 타루는 이렇게 답합니다.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신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든, 신 없이 불가해 한 현상과 재난에 휘말리든, 어쩔 수 없는 부조리에 비참해지든, 인간은 죽음을 딛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망치고 회피하고 기만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나름의 선택이자 투쟁입니다. 나아가 이에 맞서 투쟁하는 것,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기록하며 사유하는 것은 모두 삶의 의미를 묻는 일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 선택들이 모여 역사를 구성하고 삶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키우는 실천이죠. 당신은 어떤 두려움을 마주하며 살아왔나요? 다시 그 두려움과 마주했을 때 어떤 선택과 태도를 취하고 싶나요? |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2』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김주일 외 3인 옮김, 나남, 2021)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잘못된 이해에 기인한다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 일부 사람들의 생각처럼 방탕한 자의 쾌락을 말한다거나 관능적 향락에서 주어지는 쾌락을 말하는 게 아니라, 몸에 괴로움도 없고 영혼에 동요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 오히려 모든 선택과 회피의 원인들을 찾아내거나 가장 큰 소동이 영혼을 장악하는 데 근거가 되는 의견들을 몰아내는 각성한 헤아림의 능력이 유쾌한 삶을 낳는 것이다. (…) 이 모든 것들의 출발점이자 가장 큰 선은 분별이다. (〈에피쿠로스〉 편에서) |
책의 10장 ‘에피쿠로스’ 편은 이 철학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문헌이다. 에피쿠로스는 우리의 두려움과 공포가 죽음과 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 몸은 원자들의 결합이고, 영혼은 몸이 죽으면 그와 동시에 원자들로 흩어진다.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즐거움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고 에피쿠로스는 조언한다. ―김재인 교수 |
📺 키르케고르: 유신론적 실존주의 (feat. 불안, 공포, 우울, 죽음) - 김필영 작가 I 5분 뚝딱 철학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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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앉아 있는 사람은 왜 불안할까요? 키르케고르식으로 말하면, 그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선택을 결단할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절벽에서 떨어지면 죽거나 아찔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인식하는 이유와 그 체계를 들여다보는 거죠. 그는 헤겔이 주장한 보편 이성과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보편 의지에서 ‘보편’을 문제 삼았고, 중요한 것은 결국 ‘개별자로서의 나’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이란 절망을 모르는 무지의 절망, 자신을 부정하는 취약한 절망, 생을 고찰하며 불안과 허무에 빠지는 반항의 절망 세 가지 단계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을 견디는 방법이란 ‘강한 자기 결단’을 통해 신을 믿는 것이라고 주장했죠. 자연법칙에 따르는 객관적-외부적 진리는 참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을 주지만, 삶의 규칙과 경험에 따르는 주관적-내부적 진리는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통해 절망과 대면하며 견딜 힘을 준다는 겁니다. |
📺 무섭다면서 왜 그걸 돈주고 봐? 우리가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 - 이해완 교수 I 서가명강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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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실에서 피하고자 하는 공포를 예술작품으로 겪으려는 이유 말이죠. 우선, 우리는 ‘감정’을 어느 정도의 범주로 파악해야 하는가의 문제, 그리고 감정과 느낌 그리고 감각을 구분하고 관계성을 파악하는 일, 예술 작품과 일상에서 접하는 공포를 구분해야 합니다. 감각은 신체적 반응처럼 즉각적입니다. 하지만 느낌과 감정에는 인지적 판단과 종합적 해석이 들어갑니다. 신체적 반응에 대한 지적인 판단을 통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자각하는 거죠. 문제는 우리가 공포영화나 기괴한 그림을 보았을 때 그게 허구라는 걸 알아도 우리 몸이 두려운 사건을 겪을 때처럼 반응하고 느끼며 특정 감정에 사로잡힌다는 겁니다. 이 지적인 판단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기에 우리는 근육이 긴장하고 심장 박동이 올라가며 불쾌한 느낌이 드는 공포를 찾게 될까요? 그 이유를 서울대 미학과 이해완 교수가 공포에 관한 여러 담론과 예술 작품에 대한 감정과 래드포드의 <허구의 역설>이론으로 살펴봅니다. |
🏛️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 에드먼드 버크 I 고전5미닛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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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와 아름다움, 그 안에 숨겨진 두려움의 미학 서양 미학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두 개념은 ‘숭고’와 ‘아름다움’이었고 둘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이 둘을 처음으로 구분한 에드먼드 버크는 사회를 존속시키며 긴장을 이완해 주는 아름다움과 달리, 숭고는 자기보존의 본능과 연관되어 신경조직에 긴장과 수축시켜 공포로 이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숭고한 대상은 마치 폭풍처럼 인간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키지만, 해를 끼치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면 고통과 안도감이 공존하는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요. 두려움의 본질과 그 영향을 탐구하시는 분들에게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추천합니다. |
✍️맺는말 우리에겐 선택과 결단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실존적 불안과 두려움이 있죠. 제가 생각하기에 이를 견디는 첫 번째 방법은 불안과 두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선을 갖는 순간, 그것들은 나와 분리된 하나의 대상이 되고, 내 삶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 근거 있는 설렘과 기대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과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살아내는 겁니다. '나'라는 유한성과 이 뉴스레터와 삶으로 연결된 당신, 그리고 또 다른 삶들이 이루는 무한한 연결과 가능성을 사유하면서요. 《위클리 지관》과 연결된 당신의 실존에 무한한 설렘과 기대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
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어떠셨나요? 당신의 소중한 의견은 저희를 춤추게 합니다🤸♂️ |
(재)플라톤 아카데미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2길 19 SK에코플랜트 15층 수신거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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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주제는 ‘두려움’입니다.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김재인 교수의 선정 도서와 추천사가 함께 실립니다. 책으로는 광포한 시대를 살아가던 청춘의 실존적 불안과 두려움을 형상화한 시집, 치명적인 질병으로 폐쇄된 도시에서 입체적인 인간 군상을 담아낸 고전 소설, 위대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유를 통해 삶을 고찰하는 인문 도서를 소개합니다. 영상으로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에 따라 불안과 두려움을 사유한 철학자의 생애, 그리고 우리가 공포영화를 찾아보는 이유와 숭고의 의미에 관한 미학 강연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유일한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다. 가난, 독재, 불의, 실존 속 부조리와 절망을 형상화했다.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고, 하지만 “누구에게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이라고 시인은 쓴다. 쓸쓸하고 날이 궂은 어느 날 문득 시의 몇몇 구절이 떠오르곤 한다. 누구라도 비켜 가기 힘든 청춘의 서정이다. ―김재인 교수
페스트가 발생하자 도시가 폐쇄된다. 의사, 신부, 기자 등 다양한 캐릭터가 각자 죽음의 공포에 맞선다. 코로나19를 맞아 재조명된 이 책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등 실존적 물음을 되짚어보게 한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고민은 더 절박해지기 마련이다. 페스트는 인간 실존을 둘러싼 불변의 조건이다. ―김재인 교수
질병에 맞서 불굴의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사람들, 그리고 질병에 순응하고 나아가 죽음을 환영하는 사람들, 질병과 도시 그리고 현실에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일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사람까지. 그중에서도 저는 페스트의 전조를 알아차리고 환자에게 헌신하는 의사 리유, 그리고 도시 오란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자원봉사자 결성에 앞장선 타루의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타루가 '신도 믿지 않으면서 왜 헌신적이냐'고 리유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은 어떤 두려움을 마주하며 살아왔나요?
그는 헤겔이 주장한 보편 이성과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보편 의지에서 ‘보편’을 문제 삼았고, 중요한 것은 결국 ‘개별자로서의 나’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이란 절망을 모르는 무지의 절망, 자신을 부정하는 취약한 절망, 생을 고찰하며 불안과 허무에 빠지는 반항의 절망 세 가지 단계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을 견디는 방법이란 ‘강한 자기 결단’을 통해 신을 믿는 것이라고 주장했죠. 자연법칙에 따르는 객관적-외부적 진리는 참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을 주지만, 삶의 규칙과 경험에 따르는 주관적-내부적 진리는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통해 절망과 대면하며 견딜 힘을 준다는 겁니다.
우리가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실에서 피하고자 하는 공포를 예술작품으로 겪으려는 이유 말이죠. 우선, 우리는 ‘감정’을 어느 정도의 범주로 파악해야 하는가의 문제, 그리고 감정과 느낌 그리고 감각을 구분하고 관계성을 파악하는 일, 예술 작품과 일상에서 접하는 공포를 구분해야 합니다. 감각은 신체적 반응처럼 즉각적입니다. 하지만 느낌과 감정에는 인지적 판단과 종합적 해석이 들어갑니다. 신체적 반응에 대한 지적인 판단을 통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자각하는 거죠. 문제는 우리가 공포영화나 기괴한 그림을 보았을 때 그게 허구라는 걸 알아도 우리 몸이 두려운 사건을 겪을 때처럼 반응하고 느끼며 특정 감정에 사로잡힌다는 겁니다. 이 지적인 판단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기에 우리는 근육이 긴장하고 심장 박동이 올라가며 불쾌한 느낌이 드는 공포를 찾게 될까요? 그 이유를 서울대 미학과 이해완 교수가 공포에 관한 여러 담론과 예술 작품에 대한 감정과 래드포드의 <허구의 역설>이론으로 살펴봅니다.
서양 미학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두 개념은 ‘숭고’와 ‘아름다움’이었고 둘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이 둘을 처음으로 구분한 에드먼드 버크는 사회를 존속시키며 긴장을 이완해 주는 아름다움과 달리, 숭고는 자기보존의 본능과 연관되어 신경조직에 긴장과 수축시켜 공포로 이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숭고한 대상은 마치 폭풍처럼 인간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키지만, 해를 끼치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면 고통과 안도감이 공존하는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요. 두려움의 본질과 그 영향을 탐구하시는 분들에게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