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80] 오늘도 기꺼이 실패하기

관리자
2025-03-06


삼월의 소나무 잎 위에 하얀 눈꽃이 내려앉았습니다. 오늘은 이십사절기 중 세 번째 경칩(驚蟄)에 들어섭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전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듯 어제부터 눈이 한참 내렸더랍니다. 봄의 출발선 위에 내린 하얀 눈이 녹으며, 한동안 우리네 가슴에 묵은 짐도 한 아름 씻겨갔길 바라봅니다.


교정은 새 학기를 맞았고, 사회의 현장 곳곳에서도 봄을 맞아 많은 것을 새로이 꾀하는 삼월입니다. 매 순간이 새로운 시작입니다만, 독자님은 어떤 것을 새롭게 출발하시려나요? 또 하루가 펼쳐집니다. 멋진 하루 만드시길 바랍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클래식 음악의 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서양음악사에서 ‘끝없는 좌절과 극복’의 대명사로 쓰여집니다. 그의 인생은 베토벤이라는 거인의 그림자 아래 끊임없는 자기 의심과 내면의 갈등,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랑에서마저도 늘 실패와 도전의 서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함부르크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8세 때 피아노를 시작해 2년 만에 콘서트 무대에서 연주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12세부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돈벌이 현장에 나서야 했습니다. 낮에는 교회나 극장, 밤에는 술집이나 무도장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가르치며 청소년기를 보내던 가난한 청년 작곡가 지망생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바로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이었습니다. 슈만은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채고 권위 있는 출판사에 추천하여 그를 정식 작곡가로서 데뷔시키며, 열렬한 후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슈만의 정신 건강 악화와 정신병원 투병과 함께, 21살의 브람스는 그의 유일한 은인이었던 슈만과 그의 부인 클라라 사이의 6명의 자녀를 돌보게 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브람스는 이 시기를 '자신의 베르테르의 시기'라고 회상할 정도로, 클라라에 대한 깊은 연정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었습니다. 자신의 음악 속 모티브를 클라라로부터 고안해 작곡할 만큼(피아노 4중주 c단조). 그러나 당시 유럽 최고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 손꼽히던 클라라는, 슈만에 이은 브람스의 음악 인생에 큰 조력자이자 소중한 친구가 되어 주었고, 브람스 역시 작곡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 열정은 더욱 불타올랐습니다.


그는 베토벤과 슈만의 발자취를 계승해야 한다는 압박, 음악평론가들의 기대와 비평, 그리고 끊임없는 내면의 의심과 비판 속에서 끊임없이 절망과 도전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그의 고군분투 끝에 14년의 창작 기간을 거쳐 첫 번째 교향곡, 《교향곡 1번 다단조, 작품 번호 68》이 탄생합니다. 이 작품은 브람스가 베토벤의 유산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확장한 결과물로, "베토벤의 열 번째 교향곡"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며, 그의 끊임없는 좌절과 극복, 자기 성찰의 산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Brahms: Symphony No. 1 in C minor, Op. 68]

불멸의 음악,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이 연주는 곡이 지닌 웅장함과 섬세한 감성을 절묘하게 균형 맞추며, 강렬하면서도 세밀한 표현력으로 청중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건만.


브람스는 첫 번째 교향곡을 발표 후 마지막 손을 털기까지 21년을, 토마스 에디슨은 전구 발명을 위해 1,000번 넘게 실패를, 가전 브랜드 다이슨을 만든 제임스 다이슨은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를 개발하기 위해 5,126개의 실패를 거듭했다 하건만. 우리는 늘 성공의 뒷면에 붙어있는 실패와 좌절은 겪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정말 실패는 항상 우리를 성장시키고 발전하게 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종종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때로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느끼는 걸까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에 대한 유능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키고픈 강한 욕구를 가집니다. 실패는 자존감에 의문을 제기하여 스스로 대한 긍정적 감정을 위협하는데, 그 위협감이 클수록 우리는 실패로부터 배움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실패는 그 가능성만으로도 자아를 위협하므로, 우리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목표에 대해 애초에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게다가,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감정적 비용을 크게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패를 무시해 버리는 선택은 감정적으로 보자면 이익에 해당합니다. 실패를 무시해버리면, 자신과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관점을 유지할 수 있고, 이는 자아상을 보호하는 데에 유리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우리는 실패와 관련한 정보를 대함에 회피하거나 확인을 지연시키는 행동을 자주 보입니다. 예를 들어, 건강 검진을 미루거나, 학생이 낮은 성적을 예상하는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확인하지 않거나, 투자자가 시장 하락 후 계좌를 들여다보지 않는 행동 같은 것이죠. 이는 더 큰 위험이나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우리는 감정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선택을 하곤 합니다.


또한,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욕구는 기억과 믿음에 영향을 미쳐 실패를 인식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듭니다. 한 연구에서, 과제 초기에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이 과제에 성공하더라도 나는 실제보다 덜 행복할 것’이라고 잘못 예측하는 경향이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달성 가능성이 낮은 목표에 대해 그 가치를 평가 절하함으로써 자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심리적 기제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실패로 인한 믿음의 변화는 목표나 과제에 관한 관심을 떨어트려, 결국 실패로부터 배우려는 의욕을 잃게 만듭니다.

성공에서의 배움과 달리, 실패를 통해 배움을 얻는 과정은 복잡한 인지적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기 기대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편향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실패로부터 정보를 얻고 배우는 과정은 쉽고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공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은 행동을 단순히 반복하면 되지만, 실패는 그 원인을 자세히 분석하고 올바른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높은 인지적 노력을 요구하며 또한, 많은 사람이 실패로부터의 교훈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결국, 실패를 통한 배움과 학습은 이러한 심리적 방어와 인지적 한계를 극복해야만 가능한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실패로부터 배움을 위한 전략


① 자아와 실패의 분리

우선, 실패를 자아와 분리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직접 경험하는 것과 달리, 타인의 실패를 관찰하는 것은 자아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실패와 이에 대한 피드백을 관찰하다 보면 감정적 부담 없이 우리는 실패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실패를 제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효과적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실패했을까?’라는 질문 대신 ‘이 사람은 왜 실패했을까?’라고 질문하면서 자신과의 거리를 두고 실패에 대해 분석할 수 있습니다.


② 실패 해석의 재구성 (헌신이 아닌 진전으로)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한 전략입니다. 실패를 ‘내가 이 일에 부적합하다’는 헌신의 부재로 해석하면 목표의 가치와 중요성이 감소하고 동기도 떨어지지만, ‘아직 충분히 시도하지 않았다’는 진전의 부족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개선의 기회를 포착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 목표 달성하게끔 동기를 부여합니다. 흥미롭게도, 전문가들은 실패를 ‘진전의 부족’으로 해석하여 더 노력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초심자들은 이를 ‘헌신의 부재’로 받아들여 목표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실패를 헌신의 부재가 아닌 진전의 부족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실패로부터 배우려는 동기를 높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③ 구체적 피드백 나눔

마지막으로, 타인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줄 때도 실패에 대한 감정적, 인지적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드백을 받은 사람이 기분이 상하면, 자아를 보호하려는 욕구가 강해져 피드백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문제점을 지적하되, 인격적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표현은 피해야 합니다. 아울러, 단순히 ‘잘못되었다’는 피드백만 전달하면 이를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추론하기 어려우므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구체적인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달하면, 수용자가 자신의 행동을 재조정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받게 됩니다. 또, 동료나 멘토와의 진솔한 대화는 실패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실패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특성을 잘 이해한다면,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대신 기꺼이 실패를 끌어안으며 성장과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위 글은 2025년 1월 7일 발행된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 칼럼, 석혜원 교수의 "넘어짐의 미학, 실패로부터 배우기"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platonacademy.org/29/?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40060270&t=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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