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사절기 중 세 번째 절기,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을 지나갑니다. 숨은 벌레(칩蟄)들이 놀라며(경驚) 깨어나는 이 시기에는 한난(寒暖)이 서로 앞을 다투는 가운데, 날마다 기온이 조금씩 높아지다 마침내 완연한 봄의 날씨가 찾아듭니다. 지금, 어떤 얼굴로 봄날을 맞고 계시나요? 채 잠이 덜 깬 눈을 비비고 계시나요? 서둘러 따스한 봄볕을 재촉하고 계시나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어보면, 봄은 지금 여기에 그득합니다. 봄은, 어제나 내일의 마음이 아니라, 오직 지금 여기에 그득합니다. |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에서는 클래식(서양 고전) 음악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되새기고 확산하기 위하여 2013년부터 지난 십여 년간 음반 후원 사업, 영재 지원 사업, 연주자 지원 사업을 통한 클래식 음악 지원 사업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습니다. 그 중 「불멸의 명곡」 이라는 이름의 클래식 음반 후원 사업은 현재 11년간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가 감독을 맡아 클래식 음악 가운데 역사적인 명곡을 선정하여 이를 연구하고, 국내외 저명한 음악인들과 협업하여 연주∙녹음 뿐더러 실황 공연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은 클래식 음악의 뿌리 깊은 가치를 넓고 다양하게 나눠오고 있습니다. |
현재까지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집,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올리비에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와 작곡가를 선정하여 연구한 브람스&슈만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전곡집, 리스트&쇼팽의 사랑의 찬가와 러시아 대표 작곡가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 바인베르크의 피아노 3중주를 담은 러시안 엘레지 Russian Elegy 음반 등 총 8개의 「불멸의 명곡」 음반이 발매되었으며, 올해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hony Orchestra)와 협연을 통해 낭만주의 시대의 첼로 협주곡 걸작들을 선보일 예정이고 또한 작곡가 멘델스존의 음악을 연구한 음반이 발매될 예정입니다. |
영원히 지지 않을 「불멸의 명곡」 프로젝트를 이끄는 첼리스트 양성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현재 연세대 음악대학 교수이자 영국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RAM)의 초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작년부터는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강효, 정명화·정경화 자매, 손열음에 이어 제4대 예술감독을 맡아 신선하고도 단단한 ‘양성원 표’ 음악 축제 첫선을 보였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화가 오원(吾園) 장승업의 삶과 예술혼을 기리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트리오 오원’을 2009년 결성해 활동 중이며, 2018년부터는 프랑스 본(Beaune)에서 실내악 축제 ‘페스티벌 오원’의 음악감독 및 상주 아티스트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2006년 올해의 예술상, 2009년 제4회 대원음악연주상, 제1회 객석예술인상 수상, 2017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수여하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습니다. |
트리오 오원 TRIO OWON (양성원 공식홈페이지©) |
양성원 교수를 주축으로 파리음악원 출신이자 현 파리음악원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샤를리에와 피아니스트 엠마뉘엘 슈트로세가 실내악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15년째 하모니를 이어오고 있는 트리오 오원이 참여한 「불멸의 명곡」 시리즈, 영국의 유서 깊은 클래식 음악 레이블 데카(DECCA)에서 2015년 발매된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집’과 2019년 발매된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 바인베르크의 피아노 3중주 ‘러시안 엘레지(Russian Elegy)’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먼저, CD 4장과 DVD 2장으로 구성된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집 (2015)'은 베토벤의 초기, 중기, 후기에 작곡된 피아노 삼중주가 모두 담겨있어 한 음반을 통해 베토벤 음악 여정의 기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초기 작품에는 젊은 베토벤의 패기와 야심이 음악 속에 넘쳐 흐르고, 중기 작품에는 그의 삶과 내면의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낸 느낌이, 후기 작품에는 인간적인 모든 것을 초월한 영적인 이상을 그려낸 듯합니다. 또한,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을 담은 음반은 전세계적으로 드물고 오래된 낮은 음질의 음원이 대부분인 데다, 국내 음악인 중에서는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을 녹음하여 발매한 음반이라 여전히 많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걸작입니다.
실내악곡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평가받는, 총 7개의 베토벤 트리오 넘버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대공(Archduke)’은 베토벤이 청력을 상실한 후 갖가지 병에 시달리고 있을 때 쓴 후기 작품으로, 젊은 날의 투쟁과 열정을 부드럽고 명상적인 음악으로 승화시키고자 애쓴 흔적들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1814년, 베토벤은 거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상태에도 불구하고 이 곡의 직접 피아노 연주를 맡아 초연을 올렸습니다. 양성원 교수 역시 전곡집 중에서 가장 아끼는 곡으로 ‘대공’을 꼽으며, “이 곡에는 음악의 깊이가 점점 더해져 나중에는 한없이 투명하고 고요해지는 매력이 있다. 인간으로서, 음악가로서 모든 시련을 이겨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전합니다. 총 4악장 구성 중 특히나 기품 있고 자비로우며 내면을 향한 명상적 시선이 잘 느껴지는 3악장을 추천해 드리고자 감상용 영상을 공유합니다. |
Beethoven: Piano Trio No. 7 in B flat, Op. 97 "Archduke" - 3. Andante Cantabile, Ma Però Con Moto - Poco Più Adagio · Trio Owon |
다음으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하루에 여덟시간씩, 나흘간 공들여 녹음해 완성한 음반인 ‘러시안 엘레지 Russian Elegy (2019)’에는 아끼는 친구였던 루빈슈타인의 죽음을 슬퍼해 차이콥스키가 1881년 쓴 피아노 삼중주, 역시나 친한 친구의 죽음과 유대인 대학살의 비극에 전율해 쇼스타코비치가 1943년 쓴 피아노 삼중주 2번, 나치와 스탈린에 핍박받았던 바인베르크의 피아노 삼중주가 담겼습니다. 이 음반은 세 작곡가의 눈물을 연주해 개인과 민족의 비극을 애도합니다. 특별히, 음악이 표현한 시대의 비극을 인문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옥스퍼드대 러시아 문학과 음악 교수이자 인문학연구센터장인 필립 블록과의 대담을 담은 DVD도 음반과 함께 실었습니다. 이 기획 음반을 완성하고 발표하는 자리에서 양성원 교수는, “죽은 음악가를 되살리기 위해선 살아있는 연주자가 죽어야 했습니다.” 말을 남깁니다.
세 작곡가 중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Mieczysław Weinberg, 1919-1996)는 폴란드 출신의 러시아 작곡가로, 굉장한 작곡가인 동시에 상당히 저평가된 작곡가입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그는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로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고, 본인은 가까스로 러시아에 정착해서 쇼스타코비치를 만나게 되지만, 당대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운명에서 자신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음악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1948년 스탈린의 반유대주의 숙청이 시작되며 한동안 그의 작품은 연주를 금지당하고, 1953년에는 부당한 이유로 체포되어 한동안 영하의 감옥에 수감되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냅니다. 전 생애에 걸쳐 정치적 풍랑 한 가운데에 서 있었음에도 늘 초연한 태도를 유지했던 바인베르크의 음악은 한 작곡가의 개인적인 작품이라기보다 한 시대의 삶을 기록했다고 표현해야 하겠습니다. 아직은 낯선 이름, 그러나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소련의 세 번째 위대한 작곡가라 평가되는, 바인베르크의 피아노 삼중주(Op. 24)의 마지막 악장 4악장(Finale)을 추천해 드리며 감상용 영상을 공유합니다. 이 작품은 그의 첫째 부인인 나탈리아 봅시에게 헌정되었습니다. |
Weinberg: Piano Trio in A Minor, Op. 24 - 4. Finale · Trio Owon |
“결국 연주는 혼을 찾는 과정입니다. 펜으로 종이에 무엇인가를 써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노래로 전하는 사람도 있지요. 예술은 그렇게 직접적이지 않은, 더욱 부드러운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 세상에는 전해야 할 메시지가 무수히 많습니다. 음악은 그 메시지를 은밀히 전해주지요.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연주자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고 고요만 남을 때 음악은 자기 얼굴을 드러냅니다. 비로소 작곡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양성원 교수는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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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사절기 중 세 번째 절기,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을 지나갑니다. 숨은 벌레(칩蟄)들이 놀라며(경驚) 깨어나는 이 시기에는 한난(寒暖)이 서로 앞을 다투는 가운데, 날마다 기온이 조금씩 높아지다 마침내 완연한 봄의 날씨가 찾아듭니다. 지금, 어떤 얼굴로 봄날을 맞고 계시나요? 채 잠이 덜 깬 눈을 비비고 계시나요? 서둘러 따스한 봄볕을 재촉하고 계시나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어보면, 봄은 지금 여기에 그득합니다. 봄은, 어제나 내일의 마음이 아니라, 오직 지금 여기에 그득합니다.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에서는 클래식(서양 고전) 음악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되새기고 확산하기 위하여 2013년부터 지난 십여 년간 음반 후원 사업, 영재 지원 사업, 연주자 지원 사업을 통한 클래식 음악 지원 사업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습니다. 그 중 「불멸의 명곡」 이라는 이름의 클래식 음반 후원 사업은 현재 11년간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가 감독을 맡아 클래식 음악 가운데 역사적인 명곡을 선정하여 이를 연구하고, 국내외 저명한 음악인들과 협업하여 연주∙녹음 뿐더러 실황 공연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은 클래식 음악의 뿌리 깊은 가치를 넓고 다양하게 나눠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집,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올리비에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와 작곡가를 선정하여 연구한 브람스&슈만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전곡집, 리스트&쇼팽의 사랑의 찬가와 러시아 대표 작곡가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 바인베르크의 피아노 3중주를 담은 러시안 엘레지 Russian Elegy 음반 등 총 8개의 「불멸의 명곡」 음반이 발매되었으며, 올해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hony Orchestra)와 협연을 통해 낭만주의 시대의 첼로 협주곡 걸작들을 선보일 예정이고 또한 작곡가 멘델스존의 음악을 연구한 음반이 발매될 예정입니다.
첼리스트 양성원 (양성원 공식홈페이지©)
영원히 지지 않을 「불멸의 명곡」 프로젝트를 이끄는 첼리스트 양성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현재 연세대 음악대학 교수이자 영국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RAM)의 초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작년부터는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강효, 정명화·정경화 자매, 손열음에 이어 제4대 예술감독을 맡아 신선하고도 단단한 ‘양성원 표’ 음악 축제 첫선을 보였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화가 오원(吾園) 장승업의 삶과 예술혼을 기리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트리오 오원’을 2009년 결성해 활동 중이며, 2018년부터는 프랑스 본(Beaune)에서 실내악 축제 ‘페스티벌 오원’의 음악감독 및 상주 아티스트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2006년 올해의 예술상, 2009년 제4회 대원음악연주상, 제1회 객석예술인상 수상, 2017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수여하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습니다.
트리오 오원 TRIO OWON (양성원 공식홈페이지©)
양성원 교수를 주축으로 파리음악원 출신이자 현 파리음악원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샤를리에와 피아니스트 엠마뉘엘 슈트로세가 실내악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15년째 하모니를 이어오고 있는 트리오 오원이 참여한 「불멸의 명곡」 시리즈, 영국의 유서 깊은 클래식 음악 레이블 데카(DECCA)에서 2015년 발매된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집’과 2019년 발매된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 바인베르크의 피아노 3중주 ‘러시안 엘레지(Russian Elegy)’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CD 4장과 DVD 2장으로 구성된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집 (2015)'은 베토벤의 초기, 중기, 후기에 작곡된 피아노 삼중주가 모두 담겨있어 한 음반을 통해 베토벤 음악 여정의 기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초기 작품에는 젊은 베토벤의 패기와 야심이 음악 속에 넘쳐 흐르고, 중기 작품에는 그의 삶과 내면의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낸 느낌이, 후기 작품에는 인간적인 모든 것을 초월한 영적인 이상을 그려낸 듯합니다. 또한,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을 담은 음반은 전세계적으로 드물고 오래된 낮은 음질의 음원이 대부분인 데다, 국내 음악인 중에서는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을 녹음하여 발매한 음반이라 여전히 많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걸작입니다.
실내악곡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평가받는, 총 7개의 베토벤 트리오 넘버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대공(Archduke)’은 베토벤이 청력을 상실한 후 갖가지 병에 시달리고 있을 때 쓴 후기 작품으로, 젊은 날의 투쟁과 열정을 부드럽고 명상적인 음악으로 승화시키고자 애쓴 흔적들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1814년, 베토벤은 거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상태에도 불구하고 이 곡의 직접 피아노 연주를 맡아 초연을 올렸습니다. 양성원 교수 역시 전곡집 중에서 가장 아끼는 곡으로 ‘대공’을 꼽으며, “이 곡에는 음악의 깊이가 점점 더해져 나중에는 한없이 투명하고 고요해지는 매력이 있다. 인간으로서, 음악가로서 모든 시련을 이겨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전합니다. 총 4악장 구성 중 특히나 기품 있고 자비로우며 내면을 향한 명상적 시선이 잘 느껴지는 3악장을 추천해 드리고자 감상용 영상을 공유합니다.
다음으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하루에 여덟시간씩, 나흘간 공들여 녹음해 완성한 음반인 ‘러시안 엘레지 Russian Elegy (2019)’에는 아끼는 친구였던 루빈슈타인의 죽음을 슬퍼해 차이콥스키가 1881년 쓴 피아노 삼중주, 역시나 친한 친구의 죽음과 유대인 대학살의 비극에 전율해 쇼스타코비치가 1943년 쓴 피아노 삼중주 2번, 나치와 스탈린에 핍박받았던 바인베르크의 피아노 삼중주가 담겼습니다. 이 음반은 세 작곡가의 눈물을 연주해 개인과 민족의 비극을 애도합니다. 특별히, 음악이 표현한 시대의 비극을 인문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옥스퍼드대 러시아 문학과 음악 교수이자 인문학연구센터장인 필립 블록과의 대담을 담은 DVD도 음반과 함께 실었습니다. 이 기획 음반을 완성하고 발표하는 자리에서 양성원 교수는, “죽은 음악가를 되살리기 위해선 살아있는 연주자가 죽어야 했습니다.” 말을 남깁니다.
세 작곡가 중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Mieczysław Weinberg, 1919-1996)는 폴란드 출신의 러시아 작곡가로, 굉장한 작곡가인 동시에 상당히 저평가된 작곡가입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그는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로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고, 본인은 가까스로 러시아에 정착해서 쇼스타코비치를 만나게 되지만, 당대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운명에서 자신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음악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1948년 스탈린의 반유대주의 숙청이 시작되며 한동안 그의 작품은 연주를 금지당하고, 1953년에는 부당한 이유로 체포되어 한동안 영하의 감옥에 수감되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냅니다. 전 생애에 걸쳐 정치적 풍랑 한 가운데에 서 있었음에도 늘 초연한 태도를 유지했던 바인베르크의 음악은 한 작곡가의 개인적인 작품이라기보다 한 시대의 삶을 기록했다고 표현해야 하겠습니다. 아직은 낯선 이름, 그러나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소련의 세 번째 위대한 작곡가라 평가되는, 바인베르크의 피아노 삼중주(Op. 24)의 마지막 악장 4악장(Finale)을 추천해 드리며 감상용 영상을 공유합니다. 이 작품은 그의 첫째 부인인 나탈리아 봅시에게 헌정되었습니다.
“결국 연주는 혼을 찾는 과정입니다. 펜으로 종이에 무엇인가를 써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노래로 전하는 사람도 있지요. 예술은 그렇게 직접적이지 않은, 더욱 부드러운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 세상에는 전해야 할 메시지가 무수히 많습니다. 음악은 그 메시지를 은밀히 전해주지요.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연주자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고 고요만 남을 때 음악은 자기 얼굴을 드러냅니다. 비로소 작곡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양성원 교수는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