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07]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이치훈
2023-10-03


공식적인 연휴가 길었던 탓에 시월이 며칠 지난 뒤에서야 달력을 뒤로 넘깁니다. 긴 연휴 잘 보내셨나요? 연휴가 더 길었으면 싶진 않으셨나요? 혹, 일터가 그리운 순간도 간간 찾아오진 않던지요. 늘처럼, 음력 팔월의 보름달은 참으로 크고 둥글고 밝았습니다. 이맘쯤 논에서는 가을걷이로 한창 분주하겠습니다. 덩달아, 올 한 해 내 안에 무르익은 것은 무엇이고, 채 영글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며 갈무리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1950년대 한 인류학자를 통해 이름 지어진 ‘핵가족 시대’에 이어서 최근 빅 데이터 전문가를 통해 새로이 명명된 ‘핵개인 시대’로 접어든다는 기삿말이, 때맞춰 저를 포함해 주변과 우리 사회의 명절 풍경을 돌아보게 합니다. 연휴 내, 해외여행을 계획한 이들에게는 급격히 몰린 출국 인원으로 출국 4시간 전 도착을 권고하는 공식 알림 문자가 울리고, 국내에서 내려가고 올라가는 기차와 항공편들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매진 사태로 붐비고, 귀향∙귀경길 도로의 정체 소식은 여전하고, 유난히 일터를 묵묵히 지키시는 분들이 적잖아 보입니다. 계절에 따라 좋은 날을 택하여 해마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이어져 온 것이 '명절'이라 하니, 본뜻을 헤아려 보면 각자 개인에게 좋은 날을 만들어 가는 다양한 모습이 퍽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명절 연휴 끝자락 뉴스에 귀경길 정체 소식과 함께 늘 빠지지 않는 소식이 있습니다. 명절 연휴 내 가족, 친지 간의 마찰과 분쟁으로 인한 사고. 심지어 살인까지. 이에 관한 많은 연구도 이뤄질 만큼, 명절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던 가족과 친지, 주변인들과 마주하게 되다 보니 알게 모르게 관계에 따른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로 인한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소식은 어김없이 들려옵니다. 최근의 풍경처럼 명절 연휴를 가족별 또는 개인별 독립된 시간으로 보낸다고 할지라도, 평소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관계 속에 노출된 채 보내야 하다 보니 예기치 않은 다툼과 사고의 가능성은 작지 않겠습니다. 혹시나 모를 사고를 방지하고, 명절증후군이라 불리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관계의 ‘지혜로운 경계 설정’이 필요합니다. 꼭 명절 때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유용한 팁이 되어줄 방법을 소개해 드립니다.


1. 자기 자신과 자기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라.
주변 사람이 당신을 합당하게 대우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스스로 솔직하게 질문하라. '내가 얼마나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당신은 그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소중한 존재이고, 당신의 시간 역시 매우 소중하다. 스스로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들 대신 당신을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


2.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라.
특정한 문화권에서는 휴일에 가족 및 친척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이상하게 평가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가족과 친척들이 부정적인 가족 문화에서 자라났고, 가족 간의 관계가 강압적이고, 가족 간의 대화에서 서로 상처를 많이 준다면, 당신은 가족 관계에 대해 재고해 보아야 한다. 가족들 간이라도 넘지 말아야 할 합리적인 경계선을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당신에게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만나는 시간을 최소화하라.


3. 자기의 트리거를 알고, 그게 언제 터질지 예상하라.
누구나 트리거(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는 상황)를 한두 개씩 갖고 있고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당신의 트리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때 어떤 감정이 치밀어 올라오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리고 만약 그 순간을 못 참고 당신이 짜증을 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놓으라. 이런 계획이 미리 세워져 있다면 설령 트리거를 발생시키는 상황이 생겨도 최대한 당신은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4. 자신의 경계를 명확히 해, 그걸 주위에 알려주라.
미리 자신의 경계를 확실히 파악하라. 당신의 시어머니는 오전보다는 집 청소가 끝나는 오후에 오는 것이 좋은가? 시끄러운 개를 안 데리고 왔으면 좋겠는가? 그녀와 최대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을 미리 확인하고, 명확히 알려야 한다. 물론 관습상 이런 태도가 비난받을 수 있지만, 괜찮다. 어차피 당신의 시간, 당신의 인생이니 당신은 당신 뜻대로 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경계를 꾸준히 주위에 알려 주면, 주위의 사람들도 결국 그것에 익숙해질 것이다. 


5.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을 연습하라.
어떤 사람들은 남에게 상처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확실한 거절보다는 부드러운 거절을 선호한다. 하지만 부드러운 거절은 상대방에게 다시 시도할 여지를 주게 되고, 상대방이 끈질기게 부탁하게 되면 결국 못 이겨서 부탁을 들어주는 경우도 많다. 정말 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는 단호한 거절이 필요하다. 단호한 거절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면 이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단호한 거절은 처음에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자신의 경계를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하고, 훨씬 더 편안하고 당당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6. 자신을 도와줄 전략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이 모든 방법이 항상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들로 리스트를 만들어 보라. 예를 들면 산책하기, 뜨거운 물에 목욕하기, 좋아하는 음악 듣기, 속풀이 할 수 있는 친구와 전화하기, 운동하기, 일기 쓰기, 마사지 받기, 심호흡하기, 영화 보기, 명상하기 등이 있을 수 있다.


위 글은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2022년 07월 04월 발행한 '가족간의 지혜로운 경계 설정하기_조종희' 편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현대 사회의 양상은 핵가족을 넘어서 이제 핵개인으로 변모해 가는데, 어떻게 우리는 가족, 일터, 친구 등 여러 관계적 결속으로부터 자유롭게 스스로를 지키면서도, 지혜롭게 더불어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위의 여섯 가지 방안을 살피며, 내 안에, 관계 속에서 좌절된 욕구와 바람들은 없었는지 돌아보고 또, 스스로를 더욱 단단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준 관계와 조건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예민히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가을걷이하듯이요.


아래 추천 음악 목록은, 클래식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이병우 씨가 1995년에 발매한 연주곡 집 <야간 비행>에 수록된 [꼬마 버섯의 꿈]에 가수 한영애 씨가 가을 오후의 풍경을 관조적으로 써 내려간 노랫말을 붙인 [가을 시선]이라는 노래를, 가수 이소라 씨가 부른 버전(1), 한영애 씨가 부른 버전(2), 원곡 이병우 씨의 기타 연주 버전(3)을 남겨둡니다. 가을을 한층 더 깊어지게, 깊어지게 하는 음악이 되어드리길 바라며.

이소라 <가을 시선> 2000년 [꽃] 수록곡
한영애 <가을 시선> 2014년 [불어오라 바람아] 수록곡
이병우 <야간 비행> 1995년 [야간비행]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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