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8] ‘나’를 앞세우는 만큼, ‘우리’는 외로워졌다.

이치훈
2023-08-02


여름의 끝자락입니다. 가을이 도착할 입추(立秋, 8월 8일)가 한 주도 채 남지 않았으니, 혀를 내두르던 무더위도 이제 끝인사를 나눌 차례입니다. 8월 위클리 지관의 주제 ‘우정’입니다. 함께하는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따뜻한 마음’은 어떻게 그 힘을 뭉근히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 봅니다.


‘나’를 앞세우는 만큼,
‘우리’는 외로워졌다. 


어느새 ‘우리’를 붙이던 자리에 ‘나’가 늘어갑니다. 사회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아득해졌고, ‘나’들끼리 서로를 가르고 앞다투는 시대입니다. 그렇게 ‘나’를 앞세웠던 만큼, 우리는 모두 외로워졌습니다. 


이 같은 때, 같은 땅 아래쪽에서 ‘우리’를 되찾기 위해 ‘더불어 사는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농주리 앵무산 기슭, ‘사랑어린마을배움터’라는 한 공동체 이야기입니다. 10여 년 전, 순천의 황량한 폐교 터에 대안학교인 ‘사랑어린학교’가 둥지를 틀 때만 해도 일대는 계속해서 폐가가 늘어가던 낡은 산골 마을이었는데, 이제는 ‘우리’의 완연한 활기를 띠는 사랑 어린 마을이 되었습니다.

이 공동체의 중심에는 자그마한 학교가 있습니다. ‘사랑어린학교’는 현재 초등과정 12명, 중등과정 10명, 1년의 고등과정 3명이 재학 중이고, 교사 8명과 학부모였거나 현재 학부모인 어머니 교사들을 포함한 30명의 강사가 모두 함께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따로 없이요. 학교 안 관옥나무도서관에서는 다양한 마을강좌와 동아리 모임, 책 모임이 진행되고 주기적으로 청년대학, 마을인생대학이 펼쳐지고, 김민해 목사를 구심점으로 이현주 목사와 임락경 목사, 도법 스님, 음악가 한돌,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장인 안상수 시각디자이너 등을 ‘마을 스승’으로 모시고 100여 명이 어우러져 공부를 합니다. 역시 서로가 서로를 모시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는 자세로 함께하지요.


매일 아침 7시 30분, 아침 명상을 한 뒤 각자의 일과를 나누고 하루를 시작하며, 토요일 저녁 7시엔 토요 명상을, 일요일 오후 3시엔 저마다의 삶터에서 수도자의 자세로 살다가 함께 모여 예배를 합니다. 또, 매달 셋째 주 토·일요일에는 1박 2일간 한 자리에 모여 ‘노자와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공부하는데, 매달 이 마을 공부에 참석하는 이들이 50~60명입니다. 부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찾아와 ‘우리’가 됩니다. 멀리서 온 손님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 먹이고 재우는 것은 예삿일이고, 마을공동체살이에 함께하고 싶다며 머나먼 경기도와 울산, 부산, 대구에서 이주해 온 이들도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는 사랑어린학교의 졸업생 학부모들이 아이가 졸업해 떠난 뒤에도 학교 주변에서 살고 싶다며 아예 마을에 집을 지어 들어오기도 합니다.


마을은 밤마다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와 맥주, 소박한 먹거리를 빌려 ‘사랑 어린’ 마음들을 나누고 키워갑니다. 점점 마음이 왜소해지는 ‘나’는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 걸까요? 이 공동체가 오랫동안 지켜온 삶의 실천과 정신에서 지혜를 구해봅니다.


1) 세 바퀴 회의

이 마을에서는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회의를 할 때 참석자들이 빙 둘러앉아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순서대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데, 이때 절대 타인의 말을 중간에 끊고 개입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화자는 온전히 자기 이야기를 하고, 타자는 이를 온전히 들으면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다양한 의견이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돌면 접점이 찾아지고 지혜가 모입니다. 이렇게 충분히 모인 이야기를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고 뜻을 모읍니다.


2) 제비뽑기

이 공동체는 천일마다 운영진을 직접 선출하는데, 이때 독특한 제비뽑기를 통해 주어지는 결과를 따릅니다. 운영진 선출 한 달 전부터 적당한 인물들을 추천받고, 세 바퀴 회의 통해 솔직한 의견들을 나누며 혹여 자신이 추천하지 않은 사람이 선출되더라도 수긍한다는 약속을 합니다. 이때 추천자가 여럿일 경우, 학교에서 가장 어린아이가 제비뽑기해서 그 책임자를 정합니다. 어른들의 각기 다른 판단과 잣대로 대립하기보다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제비뽑기를 따라 마음들을 하나로 모읍니다.


3) 일상의 수행

이곳에서는 걸을 때, 밥 먹을 때, 일할 때 매사 일거수일투족에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일에 마음을 모으는 것을 수행으로 삼습니다. 사랑어린학교 초등과정 1학년들조차 매일 아침 자동차에 의존하지 않고, 순천만 해안가를 2㎞ 넘게 걸어서 등교하게 하는 것도 ‘저마다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는 공동체 정신을 일상의 등굣길에서부터 실천케 하는 것입니다. 또, 이곳에서는 식사를 ‘밥모심’이라고 하는데, ‘나락 한 알 속에 우주’라고 한 장일순 선생의 말대로, 밥을 먹을 때도 우주를 모시는 마음가짐을 갖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러 가기 https://platonacademy.org/28/?bmode=view&idx=14749372&t=board

(한겨레X(재)플라톤 아카데미 ‘함께하니 더 기쁜 삶-일상 고수에게 듣다’ 시리즈 - "순천만정원의 꽃보다 멋진 사람들의 경청법" 사랑어린마을배움터 인터뷰)


우정(友情)의 지혜를 일러주는 마치 경전같이 오랜 시간 아껴 꺼내 읽는 소설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1943년 발표한 소설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 관계에 대한 어린왕자와 여우의 따뜻하고 향기로운 대화가 담긴 짧은 구절을, 가수 양희은의 목소리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연주를 빌려 들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1991년 가수 양희은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며 발표된 음반에 수록된 곡으로, 오로지 이병우의 기타와 양희은의 목소리로만 구성된 8곡 중 마지막 노래 <잠들기 바로 전> 입니다.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무엇이든지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볼 수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제일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어린 왕자는 잊지 않으려고 따라 말했다.


"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해진 건 

네가 네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내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그렇지만 넌 이 진실을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넌 언제나 책임이 있어.

넌 네 장미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난 내 장미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잊지 않으려고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


사랑어린학교에서는 9년 과정을 마칠 때, 학생에게 자기 옷을 스스로 짓도록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을 배워 하루아침에 해치우는 게 아닙니다. 9년 동안 하루하루의 마음을 모으는 과정이 쌓여야만 한 땀 한 땀 자기 옷을 지을 수 있습니다. 사랑어린마을배움터 사람들은 일상 속의 수행을 통해, 마음(나)을 다스리고 함께(우리) 살아가는 힘을 기릅니다.


위 글은 한겨레X(재)플라톤 아카데미 ‘함께하니 더 기쁜 삶-일상 고수에게 듣다’ 시리즈 - "순천만정원의 꽃보다 멋진 사람들의 경청법" 사랑어린마을배움터 인터뷰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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