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배우다 - 젠더, 문화, 노화

저자/아티스트 : 마거릿 크룩섕크 (지은이), 이경미 (옮긴이)

출간일(출시일) : 2016-12-10

ISBN13 : 9788972978480

출판사(제작사/출시사) : 동녘

요약 : 여성학이나 노년학에서 '늙음'이 '여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확신에서 시작된 책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별개로 다루어지던 것들, 이를테면 건강, 정치학, 인문학, 페미니스트 노년학, 문화 분석까지 같이 묶어보려고 시도했다.

책소개 : 여성학이나 노년학에서 '늙음'이 '여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확신에서 시작된 책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별개로 다루어지던 것들, 이를테면 건강, 정치학, 인문학, 페미니스트 노년학, 문화 분석까지 같이 묶어보려고 시도했다. 동시에 여성 노화에서 중요한 주제들, 즉 주거, 교통, 메디케어, 양로원 등도 주목했다.

'늙음을 배운다'는 것은, 나이 듦이 이 시대, 이 공간의 산물이며, 생물학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측면과 사회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낙관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일련의 삶의 경험임을 인식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어떤 식으로 조작되는지 알아야만 한다. 즉, 늙음을 배우려면 노화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 관찰한 후, 그 명령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 왜 우리는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가?
우리 시대의 늙음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관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책


《나이 듦을 배우다》는 여성학이나 노년학에서 ‘늙음’이 ‘여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었다. 저자는 지금까지 별개로 다루어지던 것들, 이를테면 건강, 정치학, 인문학, 페미니스트 노년학, 문화 분석까지 같이 묶어보려고 시도했다. 동시에 여성 노화에서 중요한 주제들, 즉 주거, 교통, 메디케어, 양로원 등도 주목했다. 노화와 관련해 뿌리내린 일상의 통념이나 편견이 우리의 사고 과정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하여 노화를 어떤 좁은 틀 안으로 구겨 넣는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노화는 느리게, 눈치채지 못하게, 피할 수 없이 몸으로 찾아오는 그 무엇쯤으로 인식된다. 우리는 외부로부터 받는 대우의 방식에 맞추면서 나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부터 ‘늙음을 배운다’는 것은, 나이 듦이 이 시대, 이 공간의 산물이며, 생물학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측면과 사회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낙관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일련의 삶의 경험임을 인식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어떤 식으로 조작되는지 알아야만 한다. 즉, 늙음을 배우려면 노화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 관찰한 후, 그 명령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우리 경험을 지배하는 노화에 대한 문화적 편견을 깨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기여는 가족 내 여성의 역할이
잠재적으로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력에 대한 분석과,
할머니가 착취되고 있다는 의혹 제기일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결혼과 가정 저널(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

“이 책에서는 노인을 ‘식민화된 사람들’로 비유하면서
연령차별주의가 비인간화 차원을 넘어
실제로 노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이 책은 노화라는 주제에 페미니스트 관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노년사회학이나 여성학부에서 대학원 과정의 교재로 활용하기에 좋은 책이다.”
-《노년학자(The Gerontologist)》

“저자는 인종, 젠더, 사회 계층, 경제학 등을
넘나들며 방대한 정보를 압축해
노년학의 전반적인 주제를 다루는 필독서를 탄생시켰다.
크룩섕크가 집대성한 현재의 연구와 이론, 수행은
모든 연령층에게 ‘나이 듦 배우기’를 통찰하게 한다.
더 심도 깊은 연구를 위해 광범위한 참고자료도 제공되었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초이스(CHOICE)》

“급증하는 미국 노인 인구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연구에
태생적으로 내재된 편향된 시각을 조명하고,
어째서 인종, 젠더, 성적 지향과 달리
(이 정체성은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된 현상이라고 해석된다)
노화가 아직도 오로지 개인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로 간주되는지 질문한다.”
-《투손 위클리(Tucson Weekly)》

“나이 들어가며 드는 의문점 가운데 하나는
오랜 세월 동안 노화에 대한 수많은 선언이 있었지만
진지한 철학적 사고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 헬렌 스몰(Hellen Small)

■ 늙음을 둘러싼 문화적 통념은 어떻게 유통되는가
산업 국가들은 대부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한국사회 역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노년 인구는 점점 많아지지만 뉴스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서는 노화에 관해 주로 신체적, 의료적 건강을 다루거나 경제적, 정책적 측면에서만 노인 문제를 다루지 정작 사회적으로 큰 맥락에서 나이 듦을 이해하고 개인적 차원에서 정서적인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는 담론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늙음을 둘러싼 문화적 통념은 유통되고 있으며, 의료산업의 세력 확산을 가능케 하는 토대가 되기도 하고 그 결과물이기도 한 노인의 환자화, 노화의 의료화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늙는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대중문화나 주류 노년학과는 다르게 접근한다. 나이 듦을 배운다는 것은 신체적·물리적 변화를 온전히 경험하고, 그러한 변화가 특정 사회의 그물망 안에서, 예컨대 민족성이나 계층, 젠더, 정치경제적 풍토 아래에서 빚어지고, 여전히 그 영향을 받고 있음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개인이 자기 삶의 질을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인종과 성별, 젠더에 따른 경제적 차이로 인해 노후의 삶은 현격하게 달라진다. 노동계층이나 유색 인종이 이 간극을 좁혀보겠다고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인종, 계층, 젠더로 인한 실질적 격차를 극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회는 성공적으로 나이 들지 못하는 책임을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 소비주의 혹은 상품 소비는 성공적인 노화에 한껏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이상적 시민이란 가능한 한 오래도록 젊게 사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도덕의 이름으로’ 유포한다. 이러한 가설은 공적 지원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노력을 최대화하는 신자유주의 원칙을 구현한 것이다. 그 결과, 이 무해하게 들리는 ‘성공적인 노화’는 정치적 어젠다로 확장된다. 다시 말해, ‘생산적’으로 나이 든다는 것은 노년을 경제적 유용성으로 파악할 뿐 아니라 사회적 순응의 대상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성공적인 노화’와 함께 제안되는 ‘생산적인 노화’라는 개념은 나이 들어가는 것이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화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의 ‘단호한 개인주의’가 낳은 문화적 소산이자 보잘것없는 기념비에 불과하다. 즉, ‘성공적인 노화’라는 말은 인간을 자신의 운명을 비현실적·독자적으로 지배하는 존재로 상정하므로 사회적·정치적 행위자라는 전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 노년을 폄하하는 메시지
늙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늙음과 젊음을 저울질해봤을 때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지 이미 마음속으로는 판단이 서 있다. 누구나 나이 든다는 것을 부정하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노년을 폄하하는 메시지에 세뇌당해왔는지 모른다. 미국 사회는 대놓고 노인 세대를 살벌한 전쟁터에서 대적하는 적군에 비유한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를 정서적으로 그렇게까지 적대시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나마 아직 어른 공경이라는 전통적 사고가 실낱같지만 연명하기는 하므로.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빠르게 세계화되고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메커니즘 속에 있는지라 노인, 특히 늙은 여성을 대하는 눈길이나 태도가 언제 돌변할지는 알 수 없다. 어르신들은 그저 빨리 죽어야지, 너무 오래 살까 걱정이라고만 되풀이한다. 그 말 안에는 많은 것들이 함의되어 있다.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지도 못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존중받지도 못한다. 백세인생을 이야기하면서도 노인은 돌봄과 부양의 대상인 사회의 골칫덩이에 불과한 개체로 인식된다. 신체의 변화를 전제하면서 사회적 문맥 속에서 존엄적 존재로 자기정체성을 갖게끔 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요원하다.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강박적으로 신경을 쓰며 수동성, 광대짓, 자신이 노인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 등을 보인다. 나이 듦을 부정적으로 보고 두려워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개인에게 천착해 ‘무한정 중년으로 살고자’ 하는 소망을 품게끔 한다. ‘안티에이징’이라는 상품이 성형외과와 피부과, 쇼핑몰 등등 삶 곳곳에서 등장하며 ‘성공적 노화’라는 왜곡된 문화를 조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 여성의 노화는 왜 남성의 노화와 다르게 볼까
성형 문화 천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리프팅은 이제 주름 가득한 여성을 위한 효도 상품이 되었다. 이름도 생소한 피부과 성형 시술이 곳곳에 넘쳐흐른다. 어쩌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늙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 곳곳을 인위적으로 젊게 꾸미려는 걸까? 특히나 여성에게 투영되는 젊은이 코스프레 이미지는 남성의 노화와 분명 그 시각에서 차이가 난다. 여성의 주름과 흰머리는 자기관리를 못하는 부정적 상징처럼 인식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미 생산력을 다한 쓸모없는 존재로서 여겨진다. 남성의 시각에서 보는 아름다움이 노년이 된 여성의 삶까지 침투하는 셈이다. 우리 문화는 신체적 쇠락과 정신적 붕괴를 지독하게 혐오하며, 악랄하게도 늙은 여성들에게 그 책임을 다 뒤집어씌운다. 여성은 노년이 되어서도 대체로 수동적으로 사회적 관념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가정을 이룬 이성애 여성이 전 생애에 걸쳐 돌봄 노동을 제공하고, 남성들은 여성들의 돌봄 노동으로 보살핌 받으며 사회적인 위치를 획득하고 경제적 부를 형성했지만 이를 쉽게 간과한다. 동성애 여성, 유색인종, 흑인, 소수민족의 여성이 노년이 되어서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경제적 빈곤에 빠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개 출산율 감소는 여성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기에 가능하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의 관점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예기치 않았던 차원으로 빠져들게 된다. 늙은 여성은 어떤 말이나 제스처 때문에 늙는 것이 아니라 늙음에 대해 젊은 여성이 생각하는 바를 투사함으로써 늙어간다. 가령, 나이 든 여성은 젊은 여성들로부터, 하는 말이 ‘나이에 비해’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거나, 걸음걸이가 ‘나이에 비해’ 활달하다는 식으로 평가를 받는다. 여성학에서는 여전히 노화를 소홀히 다루며, 노화와 연관된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조차 페미니스트 관점을 견지하지 않는 편이다. 노인 중에서도 특히 여성 노인이 수많은 오명을 덮어쓰고 살지만, 내면화된 연령차별주의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쉬이 자각하지 못하고 간과한다. 저자는 노년학(gerontology)의 ‘geron’이 그리스어로 ‘늙은 남자’를 뜻하므로 노년학은 늙은 남자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러시아의 생물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Ilya Mechnikov)가 1903년에 만든 말이다. 저자는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늙은 여성을 연구한다는 뜻의 ‘노인여성학(gerastology)’을 제안한다. 물론 이 조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페미니스트 노년학’은 특정한 입장이 개입된 지식임을 암시하므로 이 용어도 다소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노인여성학은 페미니즘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 우리는 어떤 노년을 기획할 수 있을까?
격렬한 경쟁에 긴장하며 살지 않을 수 없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벅찬 것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러니 아이 키우며 생활하면서 노후까지 준비한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결혼율과 출산율 저하가 생존을 위한 선택이자 현명한 대응으로 보인다. 노년 준비는 곳곳의 걸림돌에 걸려 무산되기 쉽다. 연로한 부모가 병을 앓게 되면 대책이 없다. 간병인 제도나 재가 치료가 구체화되어 있지 않고, 생활비 지원, 또는 의료보험에서 제외되는 예외적 경우의 의료비 역시 제도로부터 구할 수 없다. 안전을 보장받지도 못한다. 가족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노년은 우울하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 후반기를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이 편안한 노년을 약속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 어디서나 나타난다는 홍반장, 원더우먼이나 슈퍼맨은 없다. 모든 것을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사회, 구조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노후가 보장되기 힘든 사회, 노인층의 빈곤율이 거의 50퍼센트에 육박해 OECD 국가 중 단연 1위인 나라(한국노동연구원, 2015년 3월)가 지금 한국의 아픈 모습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우리는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도 잘!

우리 사회에서 인생의 후반기를 설명하는, 특별히 귀에 꽂히는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은 진실로 노년을 진지한 대화 주제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꼽자면 ‘행복한’이거나 ‘건강한’ 혹은 ‘안락한’ 같은 것? 너무 추상적이어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느낌뿐이다. 또한 우리는 아닌 게 아니라 ‘마음만은 젊다’, 혹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덕담처럼 주거니 받거니 한다. 몸과 마음의 이분법이 이처럼 선명하게 일상화되어 돌아다니는 경우도 흔치 않다. 사회구조적으로 노후를 보장하고 문화적으로 노화를 존중하고 개인적으로 늙음을 반길 수 있으려면 무엇부터 건드려야 할까? 바로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노인이라 할 때 누구든 맞닥뜨리는 엇비슷한 상황이 있을 테고, 개인마다 다른 환경, 다른 입장에 노출되기도 한다. 특히 이 책에서는 오래 살았다 해서 당연히 현명하거나 지혜로울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며, 무조건 고집스럽고 무뚝뚝하고 완고할 것으로 예상하지도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 각자가 쌓아야 할 내공이 있을 것이고, 구조적으로 구비되어야 할 장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늙어가지만, 나이 듦을 제대로 상상하지도 않고 준비할 여유가 없다. 기껏해야 연금이나 보험을 들거나 일찌감치 안티에이징 마케팅에 휘둘릴 뿐이다. 그러나 노년은 훨씬 더 큰 가능성으로 온다. 사회적으로 노년을 위한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로서 노년은 더욱 블루오션이다. 그러므로 늙음에 대해, 나이 들어감에 대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 노년의 의미이고 목적인지 성찰해야 한다.

이 책은 노화, 노년의 삶이 개인에게 일어나는 긴 과정이자 현장이기는 하지만, 단지 개인의 차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제도적·문화적으로 디자인되고 있으며, 특히 여성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이것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통계 자료로 현상을 해독하는 양적 분석과, 개개인의 삶 깊숙이 침투한 다양한 층위의 변수들을 교차하면서 읽어내는 질적 분석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또한 여러 인종과 계층, 성소수자, 그리고 다양한 여성의 삶을 소중히 다루고 있다. 남성 이야기에 여성 사례를 구색 맞추듯 끼워 넣는 방식처럼 이들의 노화를 곁가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의 노화 분석에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도 다양화되고 있으므로 노화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로서 이러한 요소를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문제의식은 책 곳곳에 연구 주제나 과제로 남겨져 있다. 노년은 개별적으로 준비하고 집단 차원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조직하며 사회적으로 주목해 정책을 세워야 할 섬세하고 광대한 영역이다. 연구하는 자들은 학문적으로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을 것이고, 아직 늙지 않은 이들은 질주하는 자기 삶 속에서 더는 늙음에 대한 편견을 키우지 않을 것이다. 이미 늙은이들은 늙음에서 오는 불편함과 그 시기만의 특혜를 기꺼이 껴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로워질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누구든 계속 성장 중이고 계속 배우는 중이라는 말은 참으로 고무적이고 인상적인 메시지다. 나이 듦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 사회를 비롯한 각국에 만연한 노화에 대한 거부와 ‘젊은이 코스프레 욕망’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 주체적으로 노년의 삶을 구성하는 차원에서 이 책이 주는 물음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