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종교 시대의 새로운 종교성
: ‘명상’과 나를 찾는 여행
탈종교와 무종교인의 등장
현대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 중이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종교가 직면한 상황은 막스 베버(Max Weber) 이후 많은 이들이 역설한 ‘세속화’ 개념으로 요약된다. 과거에는 종교적 교리가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 전체를 좌우하는 가치였지만, 근대 이후에는 합리성이 운영의 지배적인 원리로 부상했다. 서구 사회의 기독교가 보여 주듯 종교적 세계관이 과거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잃게 된 것이다.
이제 종교는 개인의 선택 대상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종교 선택의 자유는 물론 믿지 않을 권리도 전면적으로 행사한다.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의 ‘무종교인’은 2007년 11.77%에서 8년 후인 2015년에 16%로 급증했다.
무종교인은 ‘종교가 없는 사람’, 더 정확히는 ‘종교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이들’(the religiously unaffiliated)을 뜻한다. 무종교인은 단일한 실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무신론자와 유물론자는 물론, 종교가 없지만 종교적 세계관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종교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무관심에서부터, 공감적 태도, 확고한 부정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다종교 사회인 우리 역시 비슷하다.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45%가 무종교인이었지만, 불과 10년 후에는 56%까지 늘어났다.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무종교인은 2000년대 들어 50%를 넘나들다 2021년에는 60%까지 증가했다.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고 그 비율이 이렇게 높은 나라는 드물다.
갤럽의 조사는 그 외에도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 준다. 우선 연령이 낮을수록 무종교인의 비율이 높았다. 19-29세의 경우 2021년에 무려 78%에 달했지만, 60대 이상은 41%에 그쳤다. 또 종교를 갖지 않는 이유 역시 ‘종교에 대한 반발’ 혹은 ‘시간적 여유 없음’에서 ‘종교에 무관심’으로 달라졌다. ‘무관심’의 비율은 1997년 26%에서 2021년에는 54%로 급증했다. 같은 맥락에서 ‘호감을 느끼는 종교가 없다’라는 비율 역시 2004년 33%에서 2021년 61%로 폭증했다. 종교 자체에 무관심한 층이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이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종교의 쇠퇴, 나아가 소멸까지도 예견한다. 종교가 영향력을 잃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종교’라는 현상이 과연 사라질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질문을 제기한 사회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체적인 개인의 출현
절대적 빈곤과 경제적 격차가 여전히 난제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현대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다. 경제적 여유는 여가의 확대, 평균수명 연장 등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대폭 개선했다.
경제적 풍요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는 현대인의 교육 수준이 과거에 비해 경이로울 정도로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1945년 전후에 80% 언저리로 추산되던 문맹률이 최근에는 조사가 무의미할 수준인 1% 미만으로 낮아졌다. 공교육 제도 덕분이다. 현대 국가는 성별, 신분 등과 무관하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하려 노력 중인데 ‘의무교육 정책’이 그 사례다. 또 경제적 풍요와 교육 수준의 향상은 민주주의의 확산으로도 이어졌다. 근대 이후, 여성의 투표권을 포함한 보통선거제도의 확대는 현대에 이르러 개인이 누리는 정치적 권리 신장을 단적으로 증언한다.
이런 변화들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개인이 자기 삶을 결정하는 진정한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는 20세기 이후에 일어났다. 이제 거의 모든 국가는 구성원들이 자기 삶의 의미를 직접 구현하는 일을 핵심 가치로 선언한다. 구성원의 ‘행복추구권’이 바로 그것이다. 선언과 현실 사이의 거리도 존재하고 바람직한 기회균등은 여전히 어렵지만,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사회의 핵심 가치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주체적 개인의 등장]
이처럼 현대인들은 자기 삶을 결정할 주체가 되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에는 짙은 그림자도 따른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커졌지만, 이로 인한 결과 역시 각자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자유를 감당할 수 없는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의 자유를 양도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마저 빚어낸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본격화된 20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나치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가 단적인 사례이다.
종교 역시 최근의 변화를 전면적으로 겪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 전통은 과거와 현저하게 위상이 달라진 개인을 마주한다. 높아진 교육 수준과 경제적 여유는 개인이 자신의 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경제적 풍요해짐에 따라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는 일은 더 이상 삶의 주된 목표가 아니다. 잘 교육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현대인들은 이제 종교적 본성에 관련된 영역에서도 삶의 의미를 직접 찾고 이를 구현하려 시도하고 있다.
‘나’를 찾는 종교성과 명상의 재조명
종교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의 출현은 종교의 위기를 분명히 보여 준다. 탈종교의 심화는 종교의 소멸을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종교가 없어지면, 인간의 ‘종교적’ 열망도 사라질까? 반론도 적지 않다. 반박하는 이들은 인간이 자연을 비롯해 자신보다 더 큰 차원을 인식하고, 그것과의 연결을 도모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유한성을 실감할수록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넘어선 무엇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욕구는 뜻밖에도 종교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종교의 테두리 밖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무종교인이 늘어나는 상황에서였다. 불교의 템플스테이와 스페인의 가톨릭 성지로 향하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여행이 대표적이다.
템플스테이는 단기간 사찰에 머물면서 명상과 같은 불교 수행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불교 신자는 물론 무종교인, 심지어 다른 종교의 신자도 여기에 참여한다. 그런데 행사를 기획하는 사찰이나 참가자들 모두 불교 개종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긴 순례길을 걷는 여행 역시 비슷하다. 홀로 혹은 소수가 종교적 배경과 무관하게 엄청난 수고를 자청해서 가톨릭의 성지로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왜 탈종교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이 시점에 불교 사찰과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종교적’ 공간이 붐비게 되었을까? 참여하는 이들의 활동을 종교적 신행(信行)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종교인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활동은 자기 존재의 깊은 차원을 발견함으로써 심신의 위안을 찾는 ‘힐링’의 시도로 해석된다. 종교적 공간과 수행이 제공했던 치유와 위안이 세속적인 맥락에서 모색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오랫동안 종교가 주었던 심신의 깊은 위안이 힐링이라는 단어로 바뀐 것이다.
서울대학교 교양과목으로 매 학기 100명 이상 수강하는 ‘명상과 수행’ 수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명상은 종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이지만, 수강생의 80% 내외는 무종교인이다. 주된 수강 동기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극복해 자기 삶을 더 잘 꾸리는 데 있다. 명상이 심리적 안녕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변모한 것이다.
수업은 크게 이론과 실습으로 구성되는데, 최종 목적은 ‘나만의 명상법’ 만들기이다. 수강생 대부분은 학기를 마칠 즈음 자신만의 명상법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다. 음악 명상, 달리기 명상, 청소 명상, 반려동물 명상 등 다채로운 방법이 보고된다. 학생들의 높은 스트레스로 인해 수업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나를 찾는 여행, 명상]
템플스테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명상과 수행’ 수업은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변화하고 있는 종교의 위상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종교성이 이처럼 개인화되고, 제도 종교 바깥에서 구현되는 최근의 흐름은 ‘영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착된다. ‘무종교의 종교’,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BNR: spiritual but not religious)과 같은 역설적인 개념들 역시 이를 표현한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 할수록 ‘종교을 넘어선 종교성’의 모색 시도는 더욱 늘어나리라 예상된다. 기성 종교도 이런 변화를 꼼꼼하게 살펴야 할 때이다.
키워드
#종교, #탈종교, #세속화, #명상, #템플스테이, #산티아고 순례길
필자_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부교수
세부 전공은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 비교 연구이고, 인간의 종교 체험과 새로운 종교성의 등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탈종교 시대의 새로운 종교성 : ‘명상’과 나를 찾는 여행
탈종교와 무종교인의 등장
현대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 중이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종교가 직면한 상황은 막스 베버(Max Weber) 이후 많은 이들이 역설한 ‘세속화’ 개념으로 요약된다. 과거에는 종교적 교리가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 전체를 좌우하는 가치였지만, 근대 이후에는 합리성이 운영의 지배적인 원리로 부상했다. 서구 사회의 기독교가 보여 주듯 종교적 세계관이 과거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잃게 된 것이다.
이제 종교는 개인의 선택 대상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종교 선택의 자유는 물론 믿지 않을 권리도 전면적으로 행사한다.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의 ‘무종교인’은 2007년 11.77%에서 8년 후인 2015년에 16%로 급증했다.
무종교인은 ‘종교가 없는 사람’, 더 정확히는 ‘종교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이들’(the religiously unaffiliated)을 뜻한다. 무종교인은 단일한 실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무신론자와 유물론자는 물론, 종교가 없지만 종교적 세계관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종교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무관심에서부터, 공감적 태도, 확고한 부정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다종교 사회인 우리 역시 비슷하다.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45%가 무종교인이었지만, 불과 10년 후에는 56%까지 늘어났다.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무종교인은 2000년대 들어 50%를 넘나들다 2021년에는 60%까지 증가했다.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고 그 비율이 이렇게 높은 나라는 드물다.
갤럽의 조사는 그 외에도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 준다. 우선 연령이 낮을수록 무종교인의 비율이 높았다. 19-29세의 경우 2021년에 무려 78%에 달했지만, 60대 이상은 41%에 그쳤다. 또 종교를 갖지 않는 이유 역시 ‘종교에 대한 반발’ 혹은 ‘시간적 여유 없음’에서 ‘종교에 무관심’으로 달라졌다. ‘무관심’의 비율은 1997년 26%에서 2021년에는 54%로 급증했다. 같은 맥락에서 ‘호감을 느끼는 종교가 없다’라는 비율 역시 2004년 33%에서 2021년 61%로 폭증했다. 종교 자체에 무관심한 층이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이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종교의 쇠퇴, 나아가 소멸까지도 예견한다. 종교가 영향력을 잃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종교’라는 현상이 과연 사라질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질문을 제기한 사회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체적인 개인의 출현
절대적 빈곤과 경제적 격차가 여전히 난제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현대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다. 경제적 여유는 여가의 확대, 평균수명 연장 등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대폭 개선했다.
경제적 풍요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는 현대인의 교육 수준이 과거에 비해 경이로울 정도로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1945년 전후에 80% 언저리로 추산되던 문맹률이 최근에는 조사가 무의미할 수준인 1% 미만으로 낮아졌다. 공교육 제도 덕분이다. 현대 국가는 성별, 신분 등과 무관하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하려 노력 중인데 ‘의무교육 정책’이 그 사례다. 또 경제적 풍요와 교육 수준의 향상은 민주주의의 확산으로도 이어졌다. 근대 이후, 여성의 투표권을 포함한 보통선거제도의 확대는 현대에 이르러 개인이 누리는 정치적 권리 신장을 단적으로 증언한다.
이런 변화들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개인이 자기 삶을 결정하는 진정한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는 20세기 이후에 일어났다. 이제 거의 모든 국가는 구성원들이 자기 삶의 의미를 직접 구현하는 일을 핵심 가치로 선언한다. 구성원의 ‘행복추구권’이 바로 그것이다. 선언과 현실 사이의 거리도 존재하고 바람직한 기회균등은 여전히 어렵지만,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사회의 핵심 가치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주체적 개인의 등장]
이처럼 현대인들은 자기 삶을 결정할 주체가 되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에는 짙은 그림자도 따른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커졌지만, 이로 인한 결과 역시 각자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자유를 감당할 수 없는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의 자유를 양도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마저 빚어낸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본격화된 20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나치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가 단적인 사례이다.
종교 역시 최근의 변화를 전면적으로 겪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 전통은 과거와 현저하게 위상이 달라진 개인을 마주한다. 높아진 교육 수준과 경제적 여유는 개인이 자신의 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경제적 풍요해짐에 따라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는 일은 더 이상 삶의 주된 목표가 아니다. 잘 교육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현대인들은 이제 종교적 본성에 관련된 영역에서도 삶의 의미를 직접 찾고 이를 구현하려 시도하고 있다.
‘나’를 찾는 종교성과 명상의 재조명
종교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의 출현은 종교의 위기를 분명히 보여 준다. 탈종교의 심화는 종교의 소멸을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종교가 없어지면, 인간의 ‘종교적’ 열망도 사라질까? 반론도 적지 않다. 반박하는 이들은 인간이 자연을 비롯해 자신보다 더 큰 차원을 인식하고, 그것과의 연결을 도모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유한성을 실감할수록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넘어선 무엇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욕구는 뜻밖에도 종교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종교의 테두리 밖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무종교인이 늘어나는 상황에서였다. 불교의 템플스테이와 스페인의 가톨릭 성지로 향하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여행이 대표적이다.
템플스테이는 단기간 사찰에 머물면서 명상과 같은 불교 수행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불교 신자는 물론 무종교인, 심지어 다른 종교의 신자도 여기에 참여한다. 그런데 행사를 기획하는 사찰이나 참가자들 모두 불교 개종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긴 순례길을 걷는 여행 역시 비슷하다. 홀로 혹은 소수가 종교적 배경과 무관하게 엄청난 수고를 자청해서 가톨릭의 성지로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왜 탈종교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이 시점에 불교 사찰과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종교적’ 공간이 붐비게 되었을까? 참여하는 이들의 활동을 종교적 신행(信行)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종교인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활동은 자기 존재의 깊은 차원을 발견함으로써 심신의 위안을 찾는 ‘힐링’의 시도로 해석된다. 종교적 공간과 수행이 제공했던 치유와 위안이 세속적인 맥락에서 모색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오랫동안 종교가 주었던 심신의 깊은 위안이 힐링이라는 단어로 바뀐 것이다.
서울대학교 교양과목으로 매 학기 100명 이상 수강하는 ‘명상과 수행’ 수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명상은 종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이지만, 수강생의 80% 내외는 무종교인이다. 주된 수강 동기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극복해 자기 삶을 더 잘 꾸리는 데 있다. 명상이 심리적 안녕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변모한 것이다.
수업은 크게 이론과 실습으로 구성되는데, 최종 목적은 ‘나만의 명상법’ 만들기이다. 수강생 대부분은 학기를 마칠 즈음 자신만의 명상법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다. 음악 명상, 달리기 명상, 청소 명상, 반려동물 명상 등 다채로운 방법이 보고된다. 학생들의 높은 스트레스로 인해 수업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나를 찾는 여행, 명상]
템플스테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명상과 수행’ 수업은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변화하고 있는 종교의 위상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종교성이 이처럼 개인화되고, 제도 종교 바깥에서 구현되는 최근의 흐름은 ‘영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착된다. ‘무종교의 종교’,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BNR: spiritual but not religious)과 같은 역설적인 개념들 역시 이를 표현한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 할수록 ‘종교을 넘어선 종교성’의 모색 시도는 더욱 늘어나리라 예상된다. 기성 종교도 이런 변화를 꼼꼼하게 살펴야 할 때이다.
키워드
#종교, #탈종교, #세속화, #명상, #템플스테이, #산티아고 순례길
필자_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부교수
세부 전공은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 비교 연구이고, 인간의 종교 체험과 새로운 종교성의 등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