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인문 플랫폼 인문360과 플라톤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인생신플라톤주의 창시자 플로티노스

2024-07-31


신플라톤주의 창시자 플로티노스


오늘은 서양 영성 전통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노스(205~270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플로티노스는 일반적으로 플라톤 사상의 계승자로서 이른바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라 불립니다. 사실 그는 플라톤의 사상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스토아학파의 사상에서도 영향을 받고 이런 사상들을 자기의 종교적 통찰을 통해 종합하려고 노력한 사상가라 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플로티노스가 이집트 북쪽에서 그리스인(희랍인)이라기보다 그리스화한 이집트 사람으로 태어났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을 그리스어 어법에 맞게 플로티노스(Plotinos)라 할 수도 있고, 나중에는 로마에 가서 가르쳤기 때문에 라틴어 어법에 맞게 플로티누스(Plotinus)라 하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라틴어식을 채택해서 ‘플로타이너스’라 발음하지만 여기서는 관례에 따라 그리스 이름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플로티노스는 젊은 시절 그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다가 28세에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플라톤 철학을 가르치던 스승으로부터 11년간 플라톤 사상에 몰두했습니다. 플로티노스는 스승으로부터 배운 페르시아와 인도의 지혜에 대해 직접 알아보기 위해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가 이끄는 페르시아 원정군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황제가 살해되자 그는 패잔병 신세로 안티옥을 거쳐 로마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철학 학교를 설립하여 제자들을 가르치고, 10여 년 후부터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다. 나중에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Porphyryos)가 이 글들을 모아 6부작의 책으로 펴냈는데, 이것이 ‘9편’을 뜻하는 그 유명한 작품 『엔네아데스Enneades』입니다. 6부작의 각 부가 9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서양 신비주의 전통에서 플로티노스의 위치는 실로 괄목할 만합니다. 그는 그리스도교 사상을 건설한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와 6세기 위僞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에게 크게 영향을 주어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영성 전통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지 않은 인물 중에서 플로티노스만큼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6세기에 이르러 고전 그리스 사상이 부흥하면서 그의 생각은 개신교 신비주의자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주었고, 나아가 이슬람의 수피 신비주의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므로, 플로티노스는 가히 서양 신비주의 사상의 원조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유출론과 세 가지 실체

플로티노스 사상의 근간은 이른바 유출론(流出論ㆍemanation theory)입니다.

그는 모든 것의 통합체로서의 절대적 실재가 있고, 그 속에 서로 독특하면서도 분리되지 않은 세 가지 신적 실재(Hypostases)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세 가지를 그리스어로 각각 헨(to Hen), 누스Nous, 프시케(Psyche)라 합니다. 절대, 최고, 근원으로서의 궁극 실재 내에서 제1의 위치에 해당하는 ‘헨’을 영어로는 ‘the One’이라 옮기고, 한국에서는 보통 일자一者라 하는데, 순수 우리말로 옮기면 물론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자’는 모든 존재를 초월하는 것으로서 ‘있다’, ‘없다’ 혹은 ‘크다’, ‘작다’라고 하는 등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일체의 범주나 개념, 생각이나 이론 등에서 벗어난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분별지(分別智)를 거부하는 불교의 공空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이 일자는 오로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실재로서 우주의 모든 존재가 흘러나오는 시원이기도 하고 또 모든 존재가 결국에는 다시 돌아가야 할 최종 목표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렇게 모든 존재의 초월적 근원이라고 하여 모든 존재 밖에 따로 독립되거나 분리된 실재라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일자는 만물을 초월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만물 중에 내재하기도 합니다. 절대자를 초월이냐 내재냐로 구분하여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초월이면서 동시에 내재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자를 초월도 되고 내재도 된다고 보는 입장을 일반적으로 ‘범재신론’이라 하는데, 옥스퍼드 대학교 존 맥퀘리 교수 같은 이는 이런 실재관이 범신론(pantheism)과 유신론(theism) 모두를 거부하며 동시에 이들을 아우르는 것이라는 뜻에서 이를 ‘변증법적 유신관’(dialectical theism)이라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제1의 실재인 일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제2의 실재인 ‘누스’입니다. 영어로는 보통 ‘Intelligence’, ‘Mind’, ‘Spirit’ 혹은 ‘Intellectual Principle’이라 번역합니다. 우리말로는 보통 ‘정신’이라 하는데, 불교에서 쓰는 용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일심’ 혹은 ‘한마음’이라 해서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흘러나왔다’고 하여 공간적으로나 시간상으로 일자가 독자적으로 어디에 먼저 있었고 그다음에 이것이 생겨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치 불과 열, 태양과 빛, 향수와 향기의 관계처럼 둘은 하나도 아니지만 또 완전히 둘도 아닌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유학에서 이(理와 기(氣)를 두고 공간적으로나 시간상으로 그 선후(先後)를 따질 수 없다고 하는 주장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누스는 ‘존재의 위계’(the hierarchy of being)라는 관점에서 볼 때 존재 영역에서는 최고의 실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일자 혹은 하나라고 하는 비존재의 영역에서 다양한 존재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경계선에 있는 실재, 그래서 모든 것이 그것을 통해 생겨나게 하는 무엇인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한편으로는 절대적인 하나와 동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물과 닿아 있는 존재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리스도교 성서 중 『요한복음』 1장 서두에 “태초에 ‘로고스’(Logos·理法)가 있었다. (…) 모든 것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것이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때 그 로고스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누스로부터 흘러나오는 제3의 실재를 프시케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영어로는 ‘Soul’, 우리말로는 ‘영혼’이라 번역합니다. 누스와 현상세계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이 영혼에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영혼과 개인적인 영혼이 있다고 합니다. 보편적인 영혼은 모든 것에 분산되어 사람을 비롯하여 동식물 등 물질세계의 모양을 형성하고 그 활동을 관장합니다. 플로티노스에 의하면, 이 물질세계 혹은 현상세계는 영혼이 신령한 것 중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만든 세계이기에, 그 당시 영지주의에서 주장하던 것과는 반대로, 현상세계 그 자체로는 악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개인적 영혼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최하의 형태는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우리의 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중간 형태의 영혼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특히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 지어주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형태의 영혼은 자기의 개체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누스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초인간적 형태의 영혼입니다. 이런 최고 형태의 초개인적 영혼은 우주적 한마음과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플로티노스 자신의 말을 빌리면 “이 둘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이라고 합니다.


유출의 역류

플로티노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출(流出)을 반대 방향으로 역류(逆流)시키는 것입니다. 인간 속에 있는 최하질의 영혼에 얽매이지 않으면, 제2의 이성적 영혼을 정화하게 됩니다. 최고 형태의 영혼이 우리를 관장하게 하여 영혼이 다시 누스로 돌아가고, 거기서 다시 더 나아가 일자 혹은 하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다시 최초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입니다. 나의 근원, 나의 참나를 찾는 것, 반본환원(返本還源)인 셈입니다.

플로티노스는 제2의 영혼을 정화하는 방법으로 예술(음악)과 사랑과 깨침을 강조합니다. 음악이나 사랑을 통해 영혼이 일자와 하나로 녹아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한 길은 깨침 혹은 철학의 길을 통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따라 나의 근원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방법을 통해 영혼이 다양성의 세계에서 초월의 세계로 승화될 때 자의식(自意識은 사라지고 신의 의식에 몰입되는 황홀경(ecstasy)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플로티노스 자신은 철학 혹은 깨침의 길을 통해 이런 경지를 맛보았다고 합니다.


유출론과 동양 사상

플로티노스의 유출론과 똑같지는 않지만 『도덕경』에 나오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제42장에 “도道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습니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도덕경』의 중심 사상 중 하나가 만물이 도道로 다시 ‘돌아감’이라 보는 관점 역시도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제32장에 “세상이 도(道)로 돌아감은 마치 개천과 계곡의 물이 강이나 바다로 흘러듦과 같다.”고 하고, 또 제40장에서는 “되돌아감이 도道의 움직임”이라고 했습니다.

플로티노스가 인도 사상, 특히 불교 사상, 그중에서도 특히 '일중다 다중일(一中多 多中一) 혹은 상즉(相卽)·상입(相入)의 관계를 강조하는 화엄사상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동경대학에서 불교를 가르치던 나카무라 하지메(中村 元) 교수가 1970년대 중반 필자가 재학하던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에 초청 강사로 왔을 때 필자에게 재확인시켜 준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관련이 있든지 없든지 양쪽 사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 검토하는 작업도 흥미 있고 유익한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비교 연구를 통해 동서양 신비 사상의 접촉점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필자_오강남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오강남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는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에서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 등의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 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종교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