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인문 플랫폼 인문360과 플라톤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역사진정한 애국심은 평등한 자유 시민의 공화국에서만

2021-04-23

인문쟁점은?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인문학적 과제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의 깊은 사색, 허심탄회한 대화 등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더 깊은 고민을 나누고자 만든 코너입니다. 매월 국내 인문 분야 전문가 두 사람이 우리들이 한번쯤 짚어봐야 할 만한 인문적인 질문(고민)을 던지고 여기에 진지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이달의 질문] “저분들은 왜 나라 하나 세우려고 그렇게 목숨까지 내놓았을까?” / 질문자 - 홍윤기(동국대 철학과 교수)

 

Q. “저분들은 왜 나라 하나 세우려고 그렇게 목숨까지 내놓았을까?”

“저분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그리고 “왜 ‘나’는 그런 ‘대한민국’의 ‘국민’, 즉 ‘국가 시민’으로, 계속 살아야 할까?”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용택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이사장),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교수) 이 두 선생님에게 어리석은 물음에 대한 지혜로운 응답을 구합니다.



 

[이달의 답변] / 답변자 -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교수)



A. 진정한 애국심은 평등한 자유 시민의 공화국에서만



 


국가의 폭력은 폭력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국가가 마피아 집단과 근원적으로 다른 것은 시민적 동의에 입각해 창출된 국가의 폭력이 정의를 지향함으로써만 궁극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존재 이유인 정의의 원칙으로 폭력을 통제하는 과업은 현실 정치의 영구적 과제입니다.


 


 

국가가 폭력을 써도 되는 이유



병역

병역



무슨 근거로 국가는 나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일까요? 나는 스스로를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내 인생을 자신이 꾸려나간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는 내게 강제로 병역 의무를 부과했으며 많은 세금을 걷어갑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형벌권과 징세권을 행사하며 우리가 국민의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위협합니다.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 행렬에 완전 무장한 군대가 총탄을 난사해 백주 대낮에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국가가 내게 해준 것도 별로 없는 터에 아예 국가를 떠나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일까요? 국가를 부인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이 국가 없이도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 수 있는 이상향을 꿈꾼 까닭이 여기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의 성립과 국가의 출현은 거의 동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가 수렵 사회 단계를 넘어 농업 문명으로 정착하면서 무리의 규모와 생산력이 증가하고 중앙 집중화된 권력의 주체인 국가가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고전총서 서양사상 사회계약론 장 자크루소 이환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출처 알라딘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미지 출처 : 알라딘)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선사 시대를 연구한 고고학과 인류학은 국가 성립 이전의 수렵 사회가 과연 평화적이고 목가적이었는지 탐구해 왔습니다. 이상주의자들의 희망과는 달리 국가 권력이 부재한 원시적 수렵사회의 삶에서도 폭력과 죽음, 전쟁이 일상이었다는 수많은 실증적 증거가 제시되었습니다. 이런 뼈아픈 교훈 앞에서 근대 철학자들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거대 폭력을 부여하는 이유를 사상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시도를 ‘사회 계약론’이라고 부릅니다.


현대인의 상식이 된 사회 계약론은 국가를 계약의 산물로 규정합니다. 국민과 국가의 관계를 ‘권리와 의무를 상호 교환하는 계약 관계’로 간주하는 것이지요. 사회 계약론은 우리가 처음에 제기한 의문에 대해서 매끄러운 답변을 제공합니다. 국민은 국가에 대해 병역과 납세 등의 의무를 지는 대신, 국가는 국민에게 안전과 자유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따라 국가가 국민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지도 못하면서 시민적 자유를 억압한다면 우리는 국가를 폭정으로 규탄하면서 국가의 부당한 폭력에 대해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회 계약론 도입 이전에 국가가 신성불가침의 절대자나 하늘의 섭리를 내세워 국민을 억압해 온 것에 비하면 인류 역사의 획기적 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근대 이후 인류 정치 체제 대부분이 계약론의 보편적 정당성을 승인한 것은 민권과 국권의 관계를 재정립한 중대 사건이었습니다.



독점적 폭력의 주체인 국가는 정의로워야



국가의 철학 한반도 현대사의 철학적 성찰 윤평중 출처 알라딘

윤평중 교수의 저서 『국가의 철학』(출처 : 알라딘)



국가와 폭력의 관계를 성찰한 근대 국가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국가는 폭력을 사용하고, 폭력의 사용을 위협하며, 폭력의 사용을 암묵적으로 의미하는 정치 질서’라는 주장입니다. 고대, 중세 국가도 그렇지만 특히 근대 국가의 경우에 그런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인류 역사가 생생히 증명하는 그대로입니다.


국가라는 정치 단위가 존재하는 한 미래에도 국가와 폭력의 본질적 상호 연관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수의 국가가 경합하면서 극단적인 무력 사용까지 불사하는 국제 정치의 지평에서 전쟁의 가능성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국가는 강대한 독점적 폭력 위에 세워진 지배·피지배의 정치 조직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탁상공론이 아니며 엄연한 세계사적 현실입니다.


물론 국가의 폭력은 폭력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국가가 마피아 집단과 근원적으로 다른 것은 시민적 동의에 입각해 창출된 국가의 폭력이 정의를 지향함으로써만 궁극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존재 이유인 정의의 원칙으로 폭력을 통제하는 과업은 현실 정치의 영구적 과제입니다. 자유 시민이 법치주의 안에서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성숙한 정치 공동체는 폭력의 토대 위에서 그 폭력을 통제하고 넘어서려는 힘겨운 노력을 통해 탄생합니다. 우리는 이런 정치 체제를 민주 공화국이라 부릅니다.


국가와 권력, 국가와 폭력이 본질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개념사적 논의는 폭력 숭배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국가와 폭력의 상호 연관성을 밝힌 냉정한 객관적 설명일 뿐입니다. 이는 정치 공동체에서 자유 시민들의 공론과 심의를 통해 나라의 정의를 구현하고 시민 주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직면해야만 하는 국가의 원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컨대 고대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 시민들은 자신들이 향유하던 자유와 번영이 시민군의 군사력 위에 근본적으로 터 잡고 있음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시민적 자유가 내란과 외침에 흔들리는 극한 상황에서 정의 담론만으로 국가를 지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키케로가 명징하게 선언한 것처럼 조국(patria)은 내가 태어난 장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유와 평등이 법치와 물리력으로 수호되는 정치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공화정의 지평에서 ‘조국’의 반대말은 ‘타국’이 아니라 ‘폭정’인 것입니다.


아름다운 평화 운동이 현실적 힘을 갖기 위해서라도 국가의 근본을 파악해야 합니다. 국가와 폭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야말로 정의를 실현하고 평화를 이루는 필수 조건입니다. 우리는 정의와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에 내재한 폭력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국가의 철학을 탐구하면서 정의와 평화만을 앞세운 채 폭력의 논리를 경시하게 되면 공허한 이상주의로 타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성리학적 관념론’과 ‘중화(中華)에 대한 사대(事大)’를 뼛속 깊이 내면화한 채 무력을 경시한 조선 왕조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잇달아 불러들여 망국 위기를 맞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광화문 광장 상징, 화폐 인물 합의조차 안 되는



오만원 권 지폐

오만 원권 지폐



국가 상징거리인 광화문 광장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역설적 징표입니다. 광화문 광장은 우리 역사의 영걸(英傑)인 세종 대왕과 이충무공을 기리고 있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인물 중에 어떤 분을 광화문 광장에 모실 수 있는지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현대사의 주요 인물인 이승만, 김구, 박정희, 김대중 가운데 누구의 동상을 광화문 광장에 세울 수 있을지 합의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누구를 세운다 해도 극심한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광화문 광장은 해방 7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우리가 ‘민주 공화정 대한민국’의 자화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웅변합니다.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는 화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나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현대 인물을 화폐에 새겨 시민적 자긍심을 높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화폐 도안의 초상은 민주 공화정과는 관련이 없는 조선 왕조 시대의 위인들 뿐입니다. 퇴계와 율곡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상이지만 현대 시민 의식의 잣대로 볼 때 칸트나 밀(J.S. Mill)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과거의 존재입니다. 나라의 근본 이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부재를 웅변하는 사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가 정체성의 탐색 과정에서 3·1 운동과 상해 임시 정부의 의의는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3·1 운동에서 분출한 민중의 힘은 대한‘민’국의 비전으로 형상화합니다. 1919년 4월 상해 임시 정부 초대 헌법인 임시 헌장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당대 세계사의 흐름을 훌쩍 앞서간 비전이었습니다. 1897년에 출발한 대한‘제’국과 단절함으로써 진정한 현대 국가가 출발한 것입니다. 조선 왕조를 식물적으로 연명시킨 대한제국의 절대 군권(君權)을 폐지하고 절대 민권의 공화정을 선포한 쾌거였습니다.



민주 공화정의 오랜 꿈, 그러나 희망 부재의 현실



1898년 서울 운종가(종로)에서 열린 만민공동회 풍경

1898년 서울 운종가(종로)에서 열린 만민공동회 풍경.

만민 공동회는 조선의 독립과 개혁을 염원하는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대규모 집회였다.



1898년 만민 공동회에서 시작된 인민 주권의 움직임은 1919년 3·1 운동의 에너지를 업고 민국(民國)으로 도약했습니다. 놀라운 역사의 비약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한반도에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나라가 선포되었습니다. 민주 공화정의 비전은 임정 헌법을 다섯 번, 대한민국 헌법을 아홉 번 개정한 지난 백 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민주 공화정의 꿈은 그만큼 호소력이 크고 장대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임시 헌장 제1조가 박제화한 문서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한반도 현대사에서 공화정의 정신은 ‘억압된 것의 귀환’처럼 되살아나 식민 통치와 독재를 버텨내게 한 근원적 힘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위상을 자랑합니다. 1인당 GDP 3만 달러와 5천만 인구를 넘어선 세계 일곱 번째 국가이기도 합니다. 촛불이 증명한 바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도 세계의 부러움을 산 바 있습니다. 한반도 유사 이래 최고의 국가적 성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 통합의 근본적 부재를 드러내는 광화문 광장과 대한민국 화폐의 교훈을 능가하는 경악스러운 통계적 지표도 적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악의 노인 빈곤율 등은 이른바 ‘헬조선’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들일 것입니다.


특히 세계 최저 출산율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웅변합니다. 전쟁이나 대량기근, 치명적 전염병의 만연 상태가 아님에도 한 국가의 출산율이 1.0 아래(2020년 기준 0.84)로 추락한 것은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사실을 웅변합니다. 세계 최저 출산율은 한국인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집단적으로 잃어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태입니다. 희망의 부재 앞에서 지난 백 년의 성공과 다음 백 년의 약속은 허망해집니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조국 대한민국에 대해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곳인지 근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공화의 나라에 대한 성찰은 그런 질문에 응답하려는 노력입니다.



총체적 위기 탈출하려면 국가 철학 정립을



성찰

성찰



우리가 지금의 총체적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겠습니까? 지난 백 년을 이끈 나라의 비전을 다음 백 년에 맞게 다듬어 미래를 대비할 방법이 있는가요? 우리를 짓누르는 위기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정치 사상적 맥락에서 이 질문들은 공화의 나라에 대한 정치 철학적 성찰로 확장됩니다.


공화정의 참뜻은 역사적 맥락에서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시민의 동의를 무시한 채 통치자나 특정 계층이 독주하는 나라는 제대로 된 공화국이 아닙니다. 사회 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은 공화국의 근간을 위협합니다. 법치 국가임에도 법 ‘위’에 있는 특정 집단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법을 악용할 때 공화정은 붕괴 위기를 맞게 됩니다.


평등한 자유 시민의 나라인 공화국에서만 진정한 애국심이 싹틀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자신의 나라라는 확신이 들어야 진정한 나라 사랑이 시민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옵니다. 성숙한 공화정에서는 애국심이 인종과 혈통에 대한 맹종이 아니라 공화정의 근본인 헌법 가치에 대한 시민적 충성심으로 표출됩니다. 헌법적 애국주의가 민주 공화정의 필수 요소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공화의 나라로 나아갈 한국 사회의 주요 과제는 첫째, 사회적 경쟁의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성의 확보이며 둘째, 합당한 격차의 인정과 사회적 약자 보호로 확보되는 공정의 수립입니다. 정의는 공평과 공정이 함께 실현된 그 너머의 지평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공정과 정의는 특정 정권을 뛰어넘는 보편 이념입니다.


우리는 현실 정치적인 이해관계의 충돌을 넘어서 보편 이념의 잠재력을 복원해 현실과 접합시키는 용기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공화의 나라의 준거인 공정과 정의는 그런 보편 이념의 대표적 사례일 것입니다. 한국 시민들에게 지금은 진정한 국가의 철학이 요청되는 결정적 시점입니다.



윤평중

1956년생.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남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한신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학원장 및 학술원장을 역임하였다.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 역사학과 방문학자, 미시간 주립대 철학과 객원 교수, 럿거스 대학 정치학과 풀브라이트 학자로 연구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국민본부 공동 대표와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2012년 이후 현재까지 조선일보에 ‘윤평중 칼럼’을 쓰고 있고 2014년 이래 KBS 해설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국가의 철학』, 『시장의 철학』,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담론이론의 사회철학』,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과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이성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 『논쟁과 담론』,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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