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인문 플랫폼 인문360과 플라톤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이 시대의 작가는 플랫폼이 만든다

2021-04-16

‘오늘의유머’에서 탄생한 뜨거운 작가


『회색 인간』의 김동식 작가는 웹 플랫폼이 탄생시킨 작가다. 그는 ‘오늘의유머’의 공포‧괴기물 커뮤니티에 처음 글을 올렸다. 10여 년 동안 주물공장과 집만 오간 김동식은 공장에서 벽만 보고 일하면서 많은 상상을 했다. 그렇게 상상한 것을 집으로 와서 바로 글로 올리곤 했다. 그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처음 올린 글은 반응이 별로였다. 그래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오른 글들을 분석했다. 글들에는 세 특성이 있었다. 글이 무조건 짧아야 하고, 첫 문장에서 사건이 바로 시작되어야 하면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반전이 있어야 했다. 이들 특성을 반영해 쓴 두 번째 작품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에는 엄청난 댓글이 달리며 바로 베스트에 올랐다. 용기를 얻은 김동식은 16개월 동안 300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김동식은 기획자 김민섭의 눈에 띄어 세 권의 소설집을 동시에 펴냈다. 그가 세 권의 소설집을 내자마자 ‘오늘의유머’ 회원들은 구매인증 릴레이를 펼치며 초판을 거의 매진시켰다. 그리고 김동식은 2018년에 가장 ‘뜨거운’ 작가가 되었다.



▲ 김동식 작가


한국에 김동식이 있다면 일본에는 카나자와 노부아키가 있다. 카나자와 노부아키는 ‘E★에브리스타’라는 웹소설 투고‧열람 플랫폼에서 『왕 게임』이라는 작품으로 뜬 스타 작가다. 웹소설에 대한 유일한 분석서,『웹소설의 충격』(이이다 이치시, 요다)에는 『왕 게임』의 성공요인에 대해서 잘 정리되어 있다. “전개 속도가 빠르지 않으면 독자는 금방 질려 하기 때문에 임팩트를 중시하여 사건을 연속적으로 발생시키고, 문장은 최대한 압축해서 썼다. 짧은 문장이더라도 독자의 기억에 남을 만한 메시지를 담은 단어를 선택했고, 뒷내용이 궁금해지도록 ‘히키(引き; 끌어당김, 뒤로 이어가는 내용)’를 매회 만들어서 독자를 매료시켰다.” 플랫폼을 통해서 작품을 알게 된 사람들이 서점과 편의점에서 종이 소설과 만화책을 구입했고, 반대로 종이책을 산 사람이 그 뒷내용을 알고 싶어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는 바람에 『왕 게임』은 마이니치신문사가 실시한 ‘학교 독서 조사’에서도 중고생이 읽은 책 베스트 5에 몇 년 동안 계속 진입했다.『왕 게임』은 평상시에 책을 읽지 않는 10대 남녀들까지 가세해 열심히 읽어주는 바람에 단행본과 문고판, 코믹스(만화책)를 합쳐서 690만 부 이상까지 성장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 카나자와 노부아키의 소설 『왕 게임』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김동식과 카나자와의 탄생 과정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들은 웹 플랫폼이 탄생시킨 새로운 유형의 작가 또는 인간형이다. 평생 글쓰기를 배워 본 일이 없는 김동식 작가는 네이버 검색을 통해 ‘소설 쓰는 법’을 배웠다. 김동식은 독자들이 자신의 글쓰기 스승이라고 이야기한다. 글을 올리면 독자들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맞춤법이나 개연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김동식은 정중하게 받아들였다. 김동식은 종이책은 거의 읽지 않았지만 웹 콘텐츠는 무수하게 읽었다. 유명한 만화. 영화, 드라마 등은 보지 않은 것을 고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카나자와 역시 『왕 게임』을 집필하기 전에는 거의 소설을 읽은 적도 없는 초보 작가였다. 작품을 인터넷에 업로드하기 시작하자 엄청난 반향이 있었고, ‘업로드하자마자 5분 만에 온다’는 독자의 감상과 의견을 밑바탕 삼아서 집필하는 작법을 익혔다고 한다. 그는 설정의 모순점에 대한 지적이 들어오면 연재를 거슬러 올라가며 수정했다. “소설 투고·열람 플랫폼이란 초보 작가가 수많은 독자에게 지적받으면서 편집자가 없더라도 작가로서 단련될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작가를 탄생시키는 산실, 플랫폼


플랫폼이 작가를 탄생시키는 산실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본의 ‘E★에브리스타’는 일간 순방문자 수가 1000만 명이며, 매일 1만 명 이상의 사람이 작품을 투고하고 있다. 이에 버금가는 플랫폼인 ‘소설가가 되자’는 일간 순방문자 수 400만 명과 등록 작가 수 68만 명을 자랑한다. 이들 플랫폼에서 인기가 있는 작품은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출간되고, 그 매출은 일본 소설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이들 소설이 절반 이상 올라있다. 이에 반해 종이잡지에 연재한 소설들은 대형출판사들마저 출간을 기피한다.


한국은 웹소설의 등장이 일본보다 빨랐다. ‘E★에브리스타’나 ‘소설가가 되자’에 비견되는 한국의 플랫폼은 ‘조아라’와 ‘문피아’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들 플랫폼에서 활동하며 연간 1억 원이 넘는 인세를 버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적어도 100명은 넘을 것이고, 10억 원을 넘는 작가도 10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쓰기 플랫폼은 계속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확산되고 있다. 『웹소설의 충격』에서 이이다 이치시는 젊은 세대가 모두 웹소설을 즐기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미래는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가처분 소득이나 가처분 시간은 인터넷 콘텐츠나 라이브, 체험형 엔터테인먼트가 차지하게 될 것은 불문가지”라고.



▲ 일본의 웹 소설 연재 사이트 ‘E★에브리스타’와 한국의 ‘조아라’

 

이제 인간은 초연결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초연결사회의 모든 개인은 웹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단 출판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문화 상품의 생산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김동식의 탄생과정은 대세가 된 방탄소년단의 탄생과정과도 닮았다. 김동식과 방탄은 직접 소설을 쓰거나 작사‧작곡을 한다. 이들은 늘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내놓는다. 무엇보다도 웹플랫폼을 통한 독자나 팬과의 연결을 매우 중시한다. 이제 창작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플랫폼이다. 어떠신가? 당신도 한 번 나서보지 않으시겠는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자 출판평론가다. 1982년 출판계에 편집자로 입문해 1983년 창작과비평사(현 창비)로 옮긴 뒤 만 15년 동안 영업자로 일했다. 1998년 삶의 방향을 바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했다.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창간해 올해로 20년째 발간해오고 있다. 2010년 한국 최초의 민간 도서관 잡지인 월간〈학교도서관저널〉을 창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 읽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열정시대』『베스트셀러 30년』『마흔 이후, 인생길』『나는 어머니와 산다』『인공지능 시대의 삶』『하이콘텍스트 시대의 책과 인간』 등 20여 권의 지은 책과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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