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인문 플랫폼 인문360과 플라톤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심리전지적 감정 시점, 연애

2021-04-14

연애 고민을 하다 보면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간신히 사랑에 빠지더라도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 사귀는 동안 행복할 때도 있지만 힘든 순간도 너무 많다. 헤어지기라도 하면 깊은 상처를 받을 것이 걱정된다.


이쯤 되면 ‘그런데도 연애를 꼭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애초에 연애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이 없고, 짝을 찾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한정된 에너지를 불확실한 연애에 쏟기보다 생산적인 일에 쏟는 게 낫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우리는 ‘바보짓’일지도 모르는 연애에 끌린다. 헤어지고 두 번 다시 연애 안 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에도 ‘그래도 어딘가에 정말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혼자 헛물켜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이성이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거나 눈곱만큼이라도 친절하면 ‘혹시 나 좋아하나?’ 하며 설레발을 친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성보다 센 감성의 힘!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이성과 감성을 기수와 코끼리에 비유했다.


“우리의 감성이 코끼리라면 우리의 이성은 거기에 올라탄 기수이다. 기수가 고삐를 쥐고 있으니 리더로 보이지만, 코끼리에 비해 기수는 너무 작고 약해서 기수의 통제력은 믿기 어렵다. 만약 코끼리와 기수의 의견이나 욕구가 일치하지 않으면 항상 코끼리가 이긴다.”


스탠퍼드대학교 교수인 칩 히스(Chip Heath)와 댄 히스(Dan Heath) 형제에 따르면 거대한 덩치와 힘을 가진 코끼리가 화가 나면 등 위에 올라타 있는 조그만 기수를 집어 던지거나 떨어트릴 수 있다. 그렇다고 코끼리가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코끼리가 없다면 사랑도 없다. 타인을 위해 몸 바치는 희생,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성애 등은 모두 코끼리의 파워다.


코끼리 등에 올라탄 사람


서구 문화권에서는 이성이 감성보다 약하다는 사실이 대단한 발견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우리 문화권에서는 오래전부터 마음의 힘을 알고 있었다. 큰일을 하려거든 ‘마음’을 먼저 다스리라고 하지 않는가.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성적’으로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감성을 등한시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정신력’이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을 이뤄내는 힘’은 사실 머리가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누군가에게 끌리는 감정, 상처받을까 봐 두렵지만 사랑은 하고 싶은 감정들을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자. 애초에 이성은 감성을 이길 수 없으니까.



사회적 동물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관계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연애도 이러한 관계 맺기의 연장선일 수 있다.


사실 사회적 욕구는 연인이 아니라도 가족, 친구나 다른 공동체에서도 해소할 수 있다. 문제는 그들과 영원히 ‘함께’하기 힘들다는 점. 특히 친구의 경우, 어릴 때는 붙어 있는 시간이 많지만 나이가 들면서 취업, 결혼, 출산 등을 거치다 보면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든다. 서로를 믿고 지지하는 마음은 변함없어도 말이다.


애초에 친구는 이러한 분리를 전제하고 만나는 걸지도 모른다. “나중에 너랑 나랑 둘 다 남자친구 생기면 커플 데이트하면 좋겠다, 그치?”라며 넷이 되는 순간을 가정하지, “우리 영원히 솔로로 둘이서만 놀자!”라고는 잘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친구에게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솔로면 우리끼리 모여서 파티하자!”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또 솔로파티는 싫어. 올해는 크리스마스 전에 남자친구 생겨서 둘이 놀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언제든 친구는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애인 또는 배우자, 자녀 등이 생기면 멀어지는 친구보다, 언제나 내가 관계의 우선인 연애가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기에 더 유용하다.



내 안에 숨겨진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기회


많은 이들이 연애하면서 ‘싸우게 되는 것’에 놀란다. 친구와는 웬만하면 양보하고 맞춰주는 평화주의자들도 연애하면 싸운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인데 왜 싸우게 되는 걸까?


바로 그 ‘하나뿐’이라서다. 영화 코드 잘 맞는 친구, 식성 잘 맞는 친구, 재미없지만 고민 상담 잘해주는 친구 등 친구는 여러 명 사귈 수 있기에 서로 취향이 맞는 일만 함께한다. 한 명에게서 모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인은 한 명이라 모든 부분에서 맞기를 기대하고, 안 맞으면 어떻게든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 다툼이 일어난다.


싸우는 연인


“네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아? 너는 남에 대한 배려가 없어. 너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지.”, “너는 어떻고? 너 말하는 게 얼마나 사람 짜증 나게 하는지 알아?”라는 등 현실 악플러가 따로 없다.


그러나 연인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솔직히 내 단점을 지적해주겠는가? 남의 경우는 나의 단점을 알아도 말해주지 않는다. 커플이니 싸우면서 ‘솔직한’ 피드백이 나오는 것이다. 다툼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나의 단점을 발견해 고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물론 연애를 통해 나의 긍정적인 부분 또한 알게 된다.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며,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어 하는 면들. 또 뜻밖의 애교나 재롱, 센스 등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장 행복감이 높아지는 방법


관리 잘한 근육질 몸매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별다른 노력 없이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보통 노력 없이 탄탄한 근육 있는 몸을 유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운동을 쉬면 근육은 빠져버린다. 근육질 몸매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몸 상태를 지속해서 잘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감탄이 나온다.


행복한 연애도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이처럼 연애는 불변하는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깨지기 쉽고 불안한 것이기에, 순간 순간 주는 쾌감과 행복감이 더욱 클지 모른다.


새로운 사람 찾는 것이 피곤하고, 귀찮고, 헤어져 고통받게 될까 두려우면서도 할 이유가 있기에, 우리의 연애는 계속된다.



최미정

연애 칼럼니스트, 성균관대학교에서 심리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심리학 전공지식과 연애하면서 마음 고생했던 경험이 합쳐져, ‘연애가 힘든 이유’ ‘행복한 연애 방법’에 대한 전문가로 거듭나고 있다. 우라질 연애질> <지속가능한 연애질> <여자, 서른> <본의아니게 연애공백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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