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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리


사임당전 - 부단한 자기 생 속에 예술을 꽃피우다

도서위치 : 역사045

저자/아티스트 : 정옥자 (지은이)

출간일(출시일) : 2016-11-30

ISBN13 : 9788937433825

출판사(제작사/출시사) : 민음사

목차 :

머리말
들어가면서

1부 사임당의 삶, 그 빛과 그림자
1_아들 이이가 그린 어머니 사임당의 생애
2_유년의 뜰
3_연하고질(煙霞痼疾)
4_아버지에게 이어받은 학문과 수양
5_고단한 결혼 생활

2부 사임당의 예술혼
6_사임당의 시와 글씨
7_사임당의 그림과 자수

3부 길이 보배가 되리라
8_사임당의 자녀 이야기
9_사임당에 대한 기록

나가면서

연보

요약 :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초충도로 유명한 신사임당의 일생을 담은 <사임당전>. 사임당이라는 인물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일생을 알아보고 사임당이 남긴 작품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책소개 :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초충도로 유명한 신사임당의 일생을 담은 <사임당전>. 사임당은 5만 원권 지폐 인물로 선정될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조선 시대 여성이지만 정작 그 삶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대체로 친정에서 편히 머무르며 율곡 이이와 같은 큰 인물을 키워 낸 현모양처 정도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과연 사임당은 여유로운 안방마님으로서 7남매를 교육하고 귀족의 호사 취미로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이 책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사임당에게 덧씌워진 여러 이미지에 대한 논란은 접어 두고 사임당의 실제 삶에 초점을 두어 살펴본다. 사임당이라는 인물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일생을 알아보고 사임당이 남긴 작품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이 책의 저자 정옥자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규장각 관장을 지냈으며, 2016년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최초 여성'이었던 저자가 그려 내는 조선 시대 여성 선비의 전범(典範), 사임당의 진정한 모습을 <사임당전>에서 만나 본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 고단한 생활의 방편이자 위안이 된 그림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담아
조선 초충도의 토착화, 세밀화의 기초를 이루다

― 100여 점의 작품으로 들여다본 사임당의 삶과 예술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초충도로 유명한 신사임당의 일생을 담은 『사임당전』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사임당은 5만 원권 지폐 인물로 선정될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조선 시대 여성이지만 정작 그 삶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대체로 친정에서 편히 머무르며 율곡 이이와 같은 큰 인물을 키워 낸 현모양처 정도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과연 사임당은 여유로운 안방마님으로서 7남매를 교육하고 귀족의 호사 취미로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이 책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사임당에게 덧씌워진 여러 이미지에 대한 논란은 접어 두고 사임당의 실제 삶에 초점을 두어 살펴본다. 사임당이라는 인물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일생을 알아보고 사임당이 남긴 작품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이 책의 저자 정옥자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규장각 관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최초 여성’이었던 저자가 그려 내는 조선 시대 여성 선비의 전범(典範), 사임당의 진정한 모습을 『사임당전』에서 만나 본다.

한량 남편과 고된 결혼 생활

사임당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난 때는 강릉 친정집에서 성장하던 유년 시절이었다.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 외에도 외할아버지 이사온, 외할머니 강릉 최씨 모두 상당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이들로 사임당의 유년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신진 사림으로 개혁파에 속했던 아버지에게서 유교 경전을 배우고 문.사.철의 학문과 시?서?화의 교양을 쌓았다. 아버지 신명화도 둘째 딸 사임당을 유달리 아껴서 사임당이 결혼할 때는 사위 이원수에게 “내가 딸이 많은데 다른 딸은 시집을 가도 서운하질 않더니 그대의 처만은 내 곁에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네그려.”라며 허전함을 내비쳤다.
사임당이 결혼했을 때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청년으로 막 접어든 시기, 한량 남편과 결혼 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사임당의 고단한 삶이 시작되었다. 든든한 아버지 신명화는 사임당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고 남편 이원수는 말년에야 한미한 관직을 음직으로 얻었을 뿐 평생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채 무능하게 지냈다. 사임당은 홀로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홀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돌보고 자녀들을 길렀다. 그 와중에 틈틈이 어려운 형편에 보태기 위해 바느질을 하고 자수를 놓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임당의 작품 대다수는 자수를 놓기 전에 먼저 본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사임당이 47세 되던 해 여름에 남편 이원수가 드디어 관직을 얻었다. 수운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수운판관이라는 미관말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봄, 사임당은 안정의 행복감을 누려 보기도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향년 48세였다.

힘겨운 삶을 지탱해 준 예술

사임당의 예술 세계는 시와 글씨, 그림과 자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작품은 그림이다. 앞서 말했듯 결혼 이후 자수는 살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그림은 자수를 위한 수본이 되었다. 사임당에게 예술 활동은 생활비를 버는 생활의 방편이자 고단했던 삶의 한 줄기 위안이었다. 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 대다수가 초충도인 것은 당시 규중의 아낙네들이 선호하여 안방에 걸어 두던 화목이 초충도였기 때문이리라 짐작된다.
사임당은 유년 시절 뜰에서 보고 관찰한 꽃과 풀과 벌레, 채소 등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는데 사임당이 작품에 구현한 살아 있는 것들의 모습은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지 않고는 어려운 것이었다. 사임당보다 200년쯤 후에 등장한 화조도 화가인 심사정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생동감이나 정밀도, 색채의 조화와 구도에 있어 사임당 작품의 우수성이 확인된다. 심사정이 사물을 직접 관찰하지 않고 다른 화보에 의존한 데 비해 사임당은 자연 속에서 온갖 생명체들을 접하면서 직접 사생하여 조선의 토착적인 초충도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는 훗날 겸재 정선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사임당이 그렸던 풀과 열매와 꽃, 곤충과 동물들이 그대로 소재로 선택되었고 사임당의 표현 기법인 몰골법(윤곽선 없이 한 붓에 그리는 화법)도 계승 발전되었다.

풀이여 벌레여 그 모양 너무 닮아
부인이 그려 낸 것 어찌 그리 교묘할꼬
(중략)
채색만을 쓴 것이라 한결 더 아름다워
그 무슨 법인가 무골법이 이것이네
― 숙종이 사임당의 초충도에 부친 시

결혼 생활과 자기실현을 함께 이룬 조선 시대의 ‘워킹맘’

저자는 사임당이 현모양처였느냐, 훌륭한 예술가였느냐 하는 이분법적 논의가 ‘사임당의 예술적 성취와 자아실현이 현모양처 역할에 누가 되었는가? 과연 모성과 여성 주체성은 상호 갈등 관계인가?’ 하는 명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임당의 예술은 결코 여유로운 귀족 취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임당은 결혼 이후 모든 살림의 부담을 떠안고 고군분투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혼 생활이 완전히 자기희생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사임당에게서 결혼 생활과 자아실현은 상호 보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남편 이원수도, 훗날 사임당에게 ‘휼륭한 어머니상’을 덧씌웠다고 언급되는 송시열도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을 부정하지 않았고 도리어 높이 칭송했다.
결론적으로 사임당은 결혼 생활의 성공과 자아실현을 함께 이룬 여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어려운 일을 전통 유교 사회에서 해낸 것이다.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학문적 토대 위에 타고난 소질과 탁월한 감수성으로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 낸 사임당은 조선 시대 최초의 시?서?화 삼절이자 여성 선비의 전범(典範)이라는 찬사를 들어 마땅하다.